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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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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서 탈피... 생각의 지평을 넓혀라

김민섭 [Dr. rafael] 2010. 11. 21. 21:45

생각의 지평을 넓혀라

최근 국가행정과 관련한 가장 탁월한 아이디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2000년생 이후 주민등록번호 지정대책'을 말할 것이다. 그 아이디어를 듣는 순간 나는 아주 사소한 곳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었구나 하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주민등록번호의 앞번호 여섯자리는 생년월일을 나타내고 뒷번호 일곱자리는 성별, 신고지, 접수번호를 나타낸다. 그런데 문제는 '생년'을 표시하는 숫자가 두자리밖에 되지 않아서 1900년생과 2000년생을 구분할 수가 없다는 데 있었다. 당시 한창 추진중이던 'Y2K대책'에서처럼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를 갱신하여 생년을 네자리 숫자로 늘리려면 너무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어야 했다. 그런데 바로 뒷번호에 해결책이 있었다. 뒷번호중 첫번째 숫자는 성별을 나타낸다. ‘1’은 남성이고, ‘2’는 여성이다. 그런데 2000년생부터 ‘3’을 남성으로, ‘4’를 여성으로 하면 중첩없이 모든 문제가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2399년까지는 이 방식을 써도 문제가 없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남성과 여성을 ‘1’과 ‘2’로서 구분한다는 고정관념을 살짝 뛰어넘음으로써 나온 것이다. 만약 그 고정관념에만 매달렸더라면 비용과 혼란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민과 번뇌만을 거듭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시각, 조금 다른 기술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례를 우리는 지금껏 많이 보아왔다. 15년전만 해도 거의 타자기에 의존하던 사무실은 이제 PC를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만약 타자기 개발에만 매달려 좀더 예쁜 활자와 부드러운 자판만을 고집하는 회사가 있었다면 이미 그 회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 더 생각하는 것, 거꾸로 뒤집어 보는 것,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것, 좀 더 머언 차원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기분좋게 만든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라. 좀더 깊게 생각하고 좀더 넓게 관찰하라. 평지를 떠나 높은 곳에서 한번 내려다 보라.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라. 굳어진 고정관념을 버리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라”는 얘기를 거듭하였다. 사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직원들만이 아니라 장관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직원들은 정부의 정책 중 작은 부분만을 담당하게 되고,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깊이 파고들기는 쉬워도 아무래도 넓게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은 장관의 몫인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그래서 나 또한 어떤 문제든지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 좀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를 늘 삶 속에서 실천하고 또 연습중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주 아이디어를 내곤 했는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미래형 해양복합생활공간'이다. 퇴임하기 얼마 전에 제안한 일이라 마무리를 짓지 못했는데, 이것은 지식정보화시대를 염두에 둔 공간모델을 고민해 보라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산업화시대에는 공장이든 사람이든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편리해서 모든 생활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컴퓨터로 일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여가를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해양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사회를 위한 해양수산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항상 해오던 수산업, 해운항만업 외에 연안공간과 관련해서도 해양수산부는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미래형 해양복합생활공간(아키토피아)'이다. 생활과 산업과 레크리에이션이 조화된 공간을 미리 준비하자는 아이디어가 현실적인 모델로 이어지면 우리의 해양도시나 바닷가의 모습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항만울타리 설계'가 공모로 간 것도 내가 제안한 일이었다. 부산이나 인천과 같은 항구도시에 사는 분들은 항만구역이 철조망을 휘감은 블록담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로와 맞붙은 곳에 있는 이런 담벼락이 보기 좋을 리 없었을 텐데도 지금까지 보안구역이니까 의례 그렇거니 하면서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부산에 출장을 갔을 때 부산지방청장이 부산시에서 항만울타리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검토중이라고 보고했다.

나는 이런 일은 정부가 혼자서 고민하며 결정하기보다는 시민들에게 아이디어를 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취지를 잘 담아서 공모에 부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야 정부정책도 홍보하고, 시민들도 함께 참여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결론이 쉽게 나니 일이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몇달 뒤 입상한 작품을 보니 한결같이 시민의 편의와 항만의 특성을 잘 그려내고 있었고, 특히 보기에 좋았다. 아마도 금년말이면 시민들도 항만에 예쁜 울타리가 놓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일과 관련하여 유사한 사례를 경험했던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빌려보라고 조언을 했던 일도 여러번 있었다. 수산업중 경쟁력이 없는 부문은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해서 나는 이전의 광업정리특별법을 참고해 보라고 했던 일도 그렇고, 선원들의 재해대책이 미흡하다길래 육상근로자의 재해보상보험을 해상쪽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랬다. 지극히 단순한 일이지만 담당자가 자기 분야만 생각하다 보면 미처 다른 분야를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으므로 장관은 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챙겨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장관으로 오기 전부터 해양수산부가 추진했던 '환적화물 유치대책'은 생각을 전환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일궈낸 아주 좋은 사례이다. 항만시설 부족으로 늘 체선.체화에 시달렸던 우리 항만들은 IMF사태를 겪으면서 한산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이 너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출입화물의 99.7%를 처리하다보니 그것만으로도 항만수요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관계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무원과 항만관계자들은 아주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늘 동북아 물류중심기지 구축을 외치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과거를 잊고 국제환적시장을 조사하고, 화물입항료 감면.부두임대료체제 개선 등을 통해 환적화물을 유치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환적화물(換積貨物, Transhipment Cargo)은 직접 목적지로 운송되지 않고 중간에 다른 선박으로 옮겨싣는 화물을 말하는데, 부두에서 모든 일이 끝나기 때문에 배후교통수요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보통 컨테이너(2TEU) 1개를 처리하는데 220달러를 벌어 들일만큼 부가가치가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환적을 위한 중간기착지로서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과 항만관계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항만노동자는 오히려 5%가 증가하였고, 만년 세계5위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을 보이던 부산항은 환적화물의 급속한 증가에 힘입어 2000년도에 세계 3위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올라섰다.

나는 지난 2월 부산항 세계 3위 도약 기념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며 “수출입화물에 자족하며 지내던 부산항이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 시야를 세계로 넓힘으로써 위기속에서 기회를 창조해 냈다”며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득한 그날 행사장에서는 참석자 모두 기쁜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번 더 생각하고 시야를 넓히면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 많아진다. 생각과 시각의 차원을 달리하여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이를 자축하는 행사가 있다면 나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달려갈 것이다. 그런 곳에 갔다오면 내 생각의 지평마저 왠지 넓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