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8.15 광복절 특집] 일본은 왜 독도를 노리나? 본문

Our issu.&New thinking/+5)이슈논평전반

[8.15 광복절 특집] 일본은 왜 독도를 노리나?

김민섭 [Dr. rafael] 2011. 8. 14. 08:44

최근 자민당 일부 의원이 울릉도 방문을 시도했다가 입국 거부되는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날로 교묘해지고 강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흥분만 한다고 독도를 지킬 수는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적을 알고 나를 알면 매번 이길 수 있다)'이라는 옛말처럼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본측의 주장과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연합뉴스는 광복절 66주년을 맞아 2005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을 제정한 시마네현 등지를 찾아가 일본의 최근 움직임을 취재하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주).

① 다케시마 자료실에 가다 

 

(마쓰에=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중심 도시인 마쓰에(松江)시의 시마네현 제3청사에 있는 다케시마 자료실.

마쓰에성 부근에 있는 이곳은 원래 현립박물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시마네현은 2005년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매년 2월22일)을 정한 데 이어 2007년 이 건물 2층 방 2개에 해당하는 공간을 자료실로 만들었다.

기자가 찾아간 12일에도 자료실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찾는 이의 발길은 드물었다. 12일 오전에는 기자 외에 노인 한 명이 들러서 자료실을 휙 둘러보고 갔을 뿐이다.

마쓰에시 시민 중에는 다케시마 자료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가 드물었다. 시내 중심가인 마쓰에역 주변의 음식점 주인은 "이름을 들어보긴 했는데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아마도 시마네 현민회관에 있지 않겠느냐"고 엉뚱한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찾는 이는 드물어도 자료실에 소장된 자료는 만만치 않았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소장 도서 500여권 중 절반 정도가 한국측 주장을 담은 자료라는 것.

동북아역사재단이나 독도본부 등이 펴낸 자료는 물론이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책 등도 빠짐없이 갖춰놓았다. 조선왕조실록 전질이나 역사 전문 계간지인 '역사비평'처럼 국내에서도 일부 연구자들만 보는 자료도 있었다. 단순히 책을 가져다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측의 핵심 주장이 담긴 대목에는 빠짐없이 표시를 해놓았다.

자료실에는 굳이 '일본해'라는 표기를 한 일본측 지도를 가져다 놓지 않고, '동해' 표기가 포함된 한국 지도를 펼쳐놓았다. 지도 옆 설명에는 '일본 지도는 독도를 상세하게 표시한 것이 없어서 한국 지도를 붙여놓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붙여놓았다.

자료실 2개의 방을 잇는 좁은 복도에 붙여놓은 연표에는 일본에 유리한 사실 관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정부가 1877년에 '울릉도와 다른 한 개 섬(外一島.독도)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도 빠트리지 않았다.

자료실을 설치한 목적이 단순한 홍보·선전에 있지 않고, 일본측 연구자들이 한국측 논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약점을 찾아내도록 돕기 위한 연구 거점을 만드는데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한일간 주장이 엇갈리는 고(古)지도에는 상세한 설명을 첨부해놓았다. 에도 막부의 지도 중에서 일본 영토에는 모두 색칠을 하면서도 울릉도와 독도에는 색칠하지 않은 지도 옆에는 '당시 일본 영토인데도 색칠을 안 한 곳은 다른 곳도 있었던 만큼 색칠을 했느냐 여부로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적어놓았다.

자료실 입구에는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남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을 방문했다는 한국측 언론보도 내용을 '한국측 최근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해놓은 것도 눈에 띄었다.

이같은 작업을 하는 이들은 스기하라 다카시(杉原隆)나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같은 시마네현 '다케시마 문제연구회' 관계자와 실무자들이다.

시모조는 최근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등 자민당 의원 3명에 앞서 다른 비행기로 울릉도에 가려고 했다가 입국 거부된 학자다. 1983년부터 15년간 주한 일본대사관, 삼성종합연수원, 인천대학교 등지를 전전하며 장기간 한국을 연구한 집념의 인물이기도 하다.

시모조는 최근 "일본의 영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중앙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한국측 자료와 연구의 약점을 찾아낼 연구기관을 더 크게 만들고 자신들의 논리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② 일본은 왜 독도에 욕심을 낼까

 

(사카이미나토=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주로 배타적경제수역(EEZ) 200해리나 어업과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이 다시 터져 나온 1970년대는 일본측 조업 기술이 발달해 독도 주변 동해 어장에서 게잡이를 할 수 있게 된 시기와 겹친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일본 총리가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발언한 것이나 한국이 독도 주변에 12해리 영해를 설정한 것도 1970년대였다.

 

 

양국의 신경전이 한층 치열해진 것은 1994년 EEZ 200해리가 적용되면서부터다. 양국간 해양 거리가 400해리를 넘지 않는 상태에서 어디를 EEZ 기점으로 삼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시마네현이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정한 배경에도 지역 어부들의 불만이 깔렸었다. 일본 어부들은 "1998년에 신어업협정을 체결했는데도 (독도를 포함한) 잠정 수역에선 한국 어부들만 조업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조업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욕망이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11일 이 지역의 어업 기지인 사카이미나토(境港)시에서 만난 시마네현 게통발 조업협회 전 회장 A씨도 "사실 다케시마가 어느 나라 땅인지는 모르겠다"며 "하지만 양국이 협의해서 잠정수역 공동 조업조차 할 수 없다면 다케시마 앞에 가서 한국에 나포됨으로써 분쟁지역이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정치가와 보수 언론은 이같은 어민들의 불만을 민족 정서를 자극하는 데 이용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산케이신문 같은 매체는 최근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자민당 의원의 울릉도 방문 소동을 계기로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는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왜곡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약점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일본과 별 관계가 없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에는 아무래도 억지가 따를 뿐만 아니라 국민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마네현의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조차 2006년에만 해도 독도 문제에 '관심 있다'는 응답이 70%에 이르렀지만, 지난해에는 60%로 떨어졌다.

시마네현의 40대 택시운전사 미시마 다모쓰(三島保)씨는 12일 기자에게 "주민 중 상당수는 다케시마가 일본 땅인지, 한국 땅인지 관심 없다"며 "최근의 한류 붐이나 한국인 관광객 등을 생각할 때 '그런 문제로 양국간 우호관계를 해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③ "흥분하지 말고 근거 제시해야"

 

 
일본 다케시마 자료실에 소장된 한국 서적들
(마쓰에=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자료실에 조선왕조실록(검은색 커버)을 비롯한 한국 서적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재일 독도 연구자 박병섭씨 "일본과 독도 역사토론 피해선 안돼"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독도에 관한 국내용 연구나 주장은 흘러넘칠 정도로 많지만 국제적으로도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독도를 일본과 영토 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되겠지만, 역사 토론까지 피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재일동포 2세인 박병섭(69)씨는 일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PC통신에 일본군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관한 글을 올려놓는 일을 하다 약 10년전부터 독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전문 연구자로 인정받아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2007년에는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일본 시마네대학 명예교수와 함께 '독도=다케시마 논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그해 일본도서관협회의 선정도서에 포함됐다. 이렇게 빠져든 이유는 독도 문제가 보기보다 "속이 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도를 무조건 지키겠다는 게 아니라 우선 사실을 규명하자는 자세로 달려들었죠"
그가 내린 잠정 결론은 고(古)문헌에 나타나는 '우산도' 표기를 근거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산도 표기는 시대에 따라 자꾸만 변했다는 게 문제죠. 일본측은 울릉도 바로 옆에 있는 죽도를 우산도라고 표기한 지도 등을 부각시켜 '한국은 독도를 인식한 적이 없고, 다른 섬을 자기 섬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박씨는 오히려 울릉도와 독도(外一島)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확인한 1877년 메이지 정부의 지령이나 울릉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울릉군에 포함시킨 1900년 대한제국 칙령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는 조선과 일본이 울릉도와 부속 도서인 독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상당 기간 논란을 벌인 끝에 17세기 들어 조선의 영토라고 결론을 내렸고, 1877년 메이지 정부와 1900년 대한제국이 이를 다시 확인했다는 점이죠"
일본에서 독도를 지키고자 애써온 박씨에게 독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약점을 묻자 예상대로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항의하는데 그칠 뿐 기초 연구를 충실히 해서 국제적으로 통할 논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약한 듯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7∼2009년의 제2차 한일 역사공동연구 당시 독도를 공동 연구주제에서 제외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일본과 정치적으로 독도 영토 문제를 협의할 필요는 없지만, 연구 차원의 대화조차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인을 설득해서 독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논리를 가다듬고, 약점을 보완해야만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움직임에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항의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증거를 대기만 하면 따로 설득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일본 극우파의 위협을 고려해 사진을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재일동포 노연구자의 호소에는 흥분은 전혀 섞여있지 않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chungwon@yna.co.kr
 

방금 이렇게 결정났다고 합니다.

 

 

 

 

 

(출처는 확인을 거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