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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베를린 장벽! 그것도 아무런 다툼없이

김민섭 [Dr. rafael] 2011. 12. 3. 22:27

4번이나 걸쳐서 쌓았던 장벽!

하루 밤 사이에 장벽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장벽이 무너진 사건이 너무나 아이러니하여 나는 멍? 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 1989년 그 해 여름부터 동 베를린에서 엄청나게 시민 대모가 일어났다고 한다.

공산국가는 우리를 잘 살게 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자유를 막느냐? 우리에게도 자유를 달라!

우리에게도 잘 살게 해 달라! 먹을 것을 달라!”

 

대모가 갈수록 심해지자 독일 통일사회당은 긴급회의를 열었고,

(독일 통일사회당은, 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이 독일의 소련군 점령 지구 내 독일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을 강제로 통합하여 동베를린에서 1946년에 창설된 정당으로,

1990년 총선 때까지 존재했던 당이다.)

 

회의에서, 출입증을 신청하면 하루쯤 걸려서 발급을 해 주고 증을 받는 사람은 서 독일을 왕래할 수 있게

해 주자. 결론을 내렸고, 내일 기자회견을 연다고 발표를 했다.

 

기자회견에서 발표 할 중요한 임무를 맡은 대변인인 Günter Schabowski 씨는

긴급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내일 기자회견에 발표할 문서만 건네 받았다.

대변인 Günter Schabowski 씨는 받아 든 문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기자회견장소로 나갔다.

기자회견에서 뭐 조만간 서로가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문을 열 것이다. 하자

미국 NBC 기자가 그게 언제요? 하고 묻자,

그 때서야 대충 문서를 훑어보면서 1989119일이요. 하자

기자들이 ? 119일이면 바로 오늘 이잖아?”

1989119일 날짜는 기자 회견하는 날 문서 종이 마지막에 찍힌 날인이었는데

Günter Schabowski 씨는 기자 회견하는 날짜를 베를린 장벽 문 여는 날이라고 발표를 해 버렸던 것이다.

 

이 방송이 밤9시 뉴스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고 뉴스를 듣고 있던 시민들이

우와!!! 하고 갑자기 5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 정문 쪽으로 우르르 몰리면서

밀어붙이자 손쓸 틈도 없이 그대로 장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날 장벽이 무너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소련 대표도 몰랐고, 연합군도 몰랐고 긴급회의를 열었던 독일 통일사회당도 몰랐고,

시민 그 누구 한 사람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알고 계셨다고.

 

 

2차 전쟁에서 지면서 히틀러가 죽고, 서 동독일을 나누어 정치를 했다.↑

 

 

독일을 케잌크로 치자면, 베를린은 케잌크 위에 채리였다. 3연합국은 저 맛있는 채리를 어찌 소련 혼자

먹게 놔 둘 수 있겠는가! 하여 압력을 가하자 소련은 베를린도 반으로 뚝 떼어 연합국에에 넘겨주고 3연합국은

베를린도 3등분하여 정치를 했다.

 

 

베를린은 공산당의 터전인 동베를린 권안에 있기에, 베를린을 반으로 잘라 준지 3년 쯤

되자, 소련은 서서히 배가 아파 베를린을 통채로 먹을 작전에서 베를린을 봉쇠하면

베를린 안에 있는 연합군들은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확히 1년이 조금 못 되는

323일간 베를린을 봉쇄했고, 그 때 3연합국은 9초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면서 베를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물자를 하루에 4.700톤씩 실어 날으자 소련이 손을 들고

베를린 봉쇄를 풀었다. ↑ 사진이 그 때 비행기가 뜨고 내린 장면이다.

 

 

 

 

베를린 시민들이 템펠호프 공항에서 날아가는 C-54를 지켜보고 있다. (1948년)

 

 

처음에는 베를린 장벽이 없었다. 연합군 점령지인 서 베를린과 동 베를린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고 한다.

그러나 공산당이 싫은 시민들이 엄청 많이 서독일로 탈출을 하자 소련은 밤사이 아무도 모르게 베를린장벽을 쌓아 버렸다.

1961 813일부터- 1989 119일까지 그렇게 시작한 장벽은 1, 철조망 2. 시멘트 3. 벽돌 4. ㄴ자 벽돌 이렇게 4번이나

바꿔가며 쌓았던 것이다. 동 베를린에서 장벽을 넘어오다 138명은 총맞아 죽고, 잡히면 스타시(STASI)감옥에 갇혀서 죽고,

얼어 죽고 매맞아 죽고 미쳐 죽고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오다 죽었던 것이다.

 

 

독일 통일사회당 대변인 (Günter Schabowski 1982년 사진)

베를린 장벽을 무너지게 했던 장본인이다.

 

 

무너진 장벽은 현재 3곳만 남아있다. 시내 중심부에 1곳, 조금 먼 곳에 조금 있고, 이곳이 젤 긴 장벽이다. (1킬로의 길이)

 

 

젤 긴 장벽 주변은 이렇게 아름다뒀다.

 

 

 

 

 

 

 

김치영이란 한국 사람도 무너진 장벽에 한마디 써 놨다. ㅎㅎ

 

 

 

 

 

 

 

 

시내 중심부에 있는 젤 큰 장벽 문. 마지막에 지켰던 소련 군인과 미국 군인의 사진이 이렇게 붙어 있고, 그 때 그 문의 모형이다.

 

 

장벽이 무너지기 전의 모습

 

 

유명한 Mcdonalds . 큰 문 바로 앞에 있다. 장벽이 무너진 날 이곳에서 사람들이 미여터지는 장소였다고. ↑

 

 

 

여기서부터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무너진 장벽이다. 이곳 장벽은 시민들이 다 뜯어가서 장벽이 별거숭이가 됐다.

1933-1945년까지의 역사와 사진들이 있다.

 

 

장벽이 생기기 전의 도시문의 모습.

 

 

도시문 앞에 그 때의 무너진 장벽 모습.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장벽은 사람들이 망치로 다 떼어가서 지금은 철조망으로 보호를 해놨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상도 다 부러져 있었다.

 

 

 

 

 

 

 

 

 

세계전쟁의 역사 공부를 하려면 독일 베를린을 가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출처:윤과 함께하는 중후한 지구여행

 

2011.11.20 최초입력

Daily Update 게시중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나보다.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