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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저버린 거장… ‘카레이스키’ 변월룡 본문

On the way to paradise/파라다이스 세곕니다

남북이 저버린 거장… ‘카레이스키’ 변월룡

김민섭 [Dr. rafael] 2012. 5. 10. 03:53

 

 

정통 사실주의에 한국의 미 접목
북서 미술 가르치다 '배신자' 찍혀

 

남북한에서 모두 잊힌 비운의 '카레이스키' 화가가 한 연구가의 집념어린 추적 끝에 오롯이 되살아났다. 미술평론가 문영대씨가 지은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변월룡(1916~1990·사진). 러시아 연해주 이주한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소수민족 자치주로 독립을 희망하는 한인 유지들의 도움을 얻어 동부 스베르들롭스크 미술학교에서 배우고 레핀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그곳에서 35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며 빼어난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러시아 이름

봐를렌은 변월룡의 러시아 발음일 뿐 그는 평생 한국인으로 살았다.

 

정통 사실주의를 계승한 그의 작품은 일본 유학생을 통해 들어온 인상주의로 출발한 근현대 한국미술사에서 희귀한 존재로 평가된다. <북한에서>, <북한의 모내기>, <금강산 소나무>, <최승희> 등 유화작품 외에 <우리시대의 사람들>, <해방기념일 1945년 8월15일 평양>, <레닌>, <이기영>, <한설야> 등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거장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은 동판화 가운데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에는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의 구도가 드러나며 <연해주 나홋카>에는 조선의 소나무가 등장하는 등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변월룡이 이런 작품을 남긴 것은 그가 연해주 출신의 카레이스키(고려인: 러시아의 한인 동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핀미술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1953년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돼 15달 동안 북한 곳곳을 다닌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 학장과 회화·데생·무대미술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전후 미술교육체제를 다졌으며 기초실력이 모자라는 교수들에게 사실주의 미술기법을 전수했다. 지금은 주체미술로 변질됐지만, 북한 미술계에는 아직도 그가 가르친 정통기법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는 영구 귀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민족의 배신자'로 찍혀 북한에서 공적이 모두 지워졌고 1959년 해외동포 고국방문단 신청도 거절당했다. 남쪽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사후 16년이 지난 뒤인 2006년 해방 60돌을 기념해 전시가 추진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소련에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딛고 예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남북한 모두에 버림받은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문영대 지음/컬처그라퍼·1만8000원

 

지은이는 "변월룡이 남북한 미술사에서 유리된 작가이지만 언젠가 통일이 되면 한국미술사에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blitz@hani.co.kr

사진 컬처그라퍼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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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牡丹峰 铜版画 1958년"

 

 

 

"板門店에서의 遣返俘虏"

 

 

 

"插秧 19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