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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초록별의 K'FM 사통팔달이 상징하는 곳은 바로 수원 남문 일대였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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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의 K'FM 사통팔달이 상징하는 곳은 바로 수원 남문 일대였습니다.

김민섭 [Dr. rafael] 2019. 9. 18. 16:17

四通八達(사통팔달)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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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通八達(사통팔달)의 상징성

 

 

 

수원 華城(화성)의 八達門(팔달문, 수원 남문)

 

 

 

(나의) 젊은 꿈이 깃든 수원 화성의 팔달문 전경

 

 

 

팔달문 서쪽 팔달산 능선에서 본 화성, 팔달문

 

 

 

지금도 가끔 와보는 수원 화성, 팔달문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화성, 화서문(수원 서문)

 

 

 

수원 화성의 야경, 장안문(수원 북문)

 

 

 

팔달산 주변의 화성, 창룡문(수원 동문)

 

 

 

팔달산 주변의 화성, 서장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in Korea)

 

화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화성 융건릉)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이 문은 화성의 남쪽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화성 안쪽에 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

<출처:문화재청>

 

 

(생전의 저희 아버지 얼굴을 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슬픈 역사로 기억되는 사도세자의 뒤주

 

수원 시가지가 한 눈에 내다뵈는 팔달산 중턱에 위치한 수원시립중앙도서관


  2,1학기말 평택에서 자취하다 이사왔건만 전학미쓰로 평택고를 계속 통학하며 이곳 도서관에서 독학,

성균관대엔 무난히 합격했지만 전액 장학생에 선정이 안되어 재수, 서울대 점수 획득 , 또 내신에서 밀린후

부모가 계신 시골, 화성 해안가로 귀향, 사랑방에서 지내다가 9월에 다시 수원에 돌아와 서울대에 응시

그러나 그땐 장애인 등 특별 전형도 없었고 총점에 합산되는 체력장 점수에서까지 불리

그렇게 자고나면 공부하러 갔던 열공의 공간이

사도세자의 뒤주나 후회의 장소로 기억되지 않기를..

 

누구지??? 나야 나! 나 맞는데.. (중1 수학여행 때, 속리산 바위에 걸터 앉아서)

 

흐르는 노래는 이필원의 추억


2012.08.11 사진.글 처음 입력 게시

2018.03.15 업데이트 / 2019.11.1 리바이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