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6·25 고등학생 70%가 ‘북침’이라고? 세계사로 본 Unknown Korean War 한국 전쟁 본문

Welcome to green life/+ 국경일 등에

6·25 고등학생 70%가 ‘북침’이라고? 세계사로 본 Unknown Korean War 한국 전쟁

김민섭 [Dr. rafael] 2013. 6. 25. 00:00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Korean War.(1950.06.25. ~ 1953.07.27.)

컬러영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제조한 탱크로 38선을 넘어 남침해 왔다. 오전 9시경에는 개성 방어선을 격파하고 당일 오전에 동두천, 포천을 함락시켰다. 26일 오후에 의정부를, 27일 정오에는 이미 서울 도봉구의 창동 방어선을 넘고 있었다. 창동 방어선이 뚫린 대한민국 국군은 강북구의 미아동에 있는 미아리 고개에 미아리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나 조선인민군의 전차에 의해 붕괴되었다. 28일 새벽 2시 30분에는 한강에 있던 한강대교가 폭파되었고, 이후 서울에는 붉은 깃발이 내걸렸다. 7월 14일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겨 주었다. 정부는 대전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전했다. 1950년 9월 15일에는 인천 상륙 작전을 펼치고 같은 해 9월 28일에는 낙동강 방어선을 넘었고, 10월 1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함락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었고 그 와중에 거창 양민 학살 사건, 국민 방위군 사건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1953년 7월 27일에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한국 전쟁은 원칙적으로 존속되고 있다.

 

(1)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는 6·25 사변(六二五事變)(정부의 호칭) 혹은 6.25 전쟁(六二五戰爭)[4], 그 밖에 한국전쟁, 한국동란(韓國動亂), 6·25 동란(六二五動亂)이라 부른다. (2)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으로 부른다. 초기부터 80년대까지는 6.25사변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80년대 민주화투쟁시국의 진보적 지식계층에서 외국(특히 미국)의 문헌에 등장하는 "Korean War"를 타국의 사건을 다루듯 직역해서 "한국 전쟁"으로 번역보급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각종 학계와 언론, 출판계에서까지 따라 사용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한국 전쟁'이라는 호칭은 이 전쟁이 마치 제3의 국가에서 벌어진 듯 보이게 하는 점이 문제라고 주장한다.[5]

 

(3)다른 국가들은 조선 전쟁(일본어: 朝鮮戦争 ちょうせんせんそう, 일본), 항미원조전쟁(중국어 정체: 抗美援朝戰爭, 중화인민공화국), 한국/조선 전쟁(Korean War[6]) 등 입장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4)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알려지지 않는 전쟁(The Unknown War)으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