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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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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만 보이는 세상, 가끔은 이렇다는데...

김민섭 [Dr. rafael] 2010. 9. 12. 19:30

'착하게 살다가는 쥐한테 묻어 뜯기는 세상'이라고
한겨레 고명섭 기자 

 

 

»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이가 승승장구하는 꼴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저들이 지금 큰소리칠지언정 나중에는 벌을 받게 되리라고요. 우리네 속담처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니까요.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우리는 세상의 올바른 법도가 실현되리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에라스뮈스는 ‘사악한 자는 쥐에게라도 깨물릴 것’(비룸 임프로붐 벨 무스 모르데아트, virum improbum vel mus mordeat)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소개합니다. “나쁜 녀석은 벌을 피할 수 없고 어떻게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뜻이래요.

그런데 에라스뮈스는 평소와는 달리, 자기가 소개한 이 격언에 자기가 딴죽을 걸었어요. 격언을 뒤집어 보니 차라리 현실과 맞더라나요. “선량한 사람은 하찮은 쥐한테도 물어뜯기지만, 사악한 사람 앞에서는 용들도 감히 이빨을 드러내지 못한다. 언제나 착한 사람만 당하게 마련이니까.”

에라스뮈스의 주변에도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었대요. 내로라 하던 어떤 부자 양반이 중병에 걸렸답니다. 에라스뮈스의 친구인 젊은 의사가 병이 옮을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치료했어요. 그런데 ‘산더미 같은 황금’을 주겠다던 부자 양반은 병이 낫자 태도가 바뀌더래요. 온갖 핑계로 치료비를 안 주더니 나중에는 사소한 호칭 문제로 꼬투리를 잡더랍니다. “라틴어로 나를 부르며 높임말을 쓰지 않다니!” 그는 짐짓 성을 내며 의사를 쫓아냈대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예나 지금이나 모질고 독한 사람이 쉽게 성공하지 않나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선량한 사람들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혀 핍박받기 일쑤고요. 옛날 중국에서 가장 어질고 행실 바른 사람은 백이와 숙제였답니다. 가장 무도한 악한은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살을 뜯어먹었다던 도척이란 녀석이었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백이와 숙제는 절개를 지키다가 굶어 죽고, 도척은 내키는 대로 살며 천수를 누렸대요. 한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울부짖었어요.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상해준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만약 이러한 것이 천도(하늘의 도리)라 한다면, 천도는 과연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 (<사기>, 백이열전.)


» 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에라스뮈스에 따르면 착한 사람이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래요. “선량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에는 위험부담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앙갚음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하찮은 쥐조차 물어뜯겠다고 달려드나 봐요.

서럽고 답답한 노릇입니다. 선량한 사람도 때로는 무섭다는 걸 보여줘야 할까요? 명분만 옳다면 약간의 해코지는 정당화될지도 몰라요. 여기에 관한 이론도 적지 않더군요. 그러나 조심하세요. 사악한 자들을 물리치는 일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어느덧 나 자신도 더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지요? 정말이지 쉽지 않은 문제로군요.

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