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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合縱連橫)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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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合縱連橫)

김민섭 [Dr. rafael] 2010. 11. 26. 05:34

 

우리가 현시대의 정치판등에서 많이 듣고 봐온 합종연횡(合縱連橫).. 이 말은 전국시대 중기 이후 본격화 가시화된 전국칠웅(戰國七雄)간의 치열한 외교정책을 함축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써.. 이 합종연횡을 만들어낸 두 유세가의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자.. ㅋ


 

소진 

장의 


 


소진(蘇秦)은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유세가(游說家)로 주(周)나라 낙양 출신이고 손빈, 방연과 같이 귀곡선생의 문하생중 하나였는데.. 그 또한 출사후에 제후국들을 돌며 유세를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서 낙양의 가족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가족의 심한 곤대와 문전박대를 당하며 쫓겨날판에.. 간신히 노자를 마련해 먼저 상앙의 변법시행으로 강국으로 부상중이었던 진나라 혜문왕을 찾아가 첫 유세를 펼쳤지만 실패하고 만다.. 아마도 상앙 사건의 잔재때문에 유세가들의 세치혀를 조심하면서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였던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진을 보고서 가족들은 또 문전박대를 한다.. ㅋ

이렇게 청운의 뜻을 품고 나갔으나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소진을 두고 전국책(戰國策)에서는계자공낭(季子空囊:계자는 주머니가 다 털렸다), 계자구패(季子裘敝:계자는 검은 가죽 옷이 닳아서 해졌다)라고 한다. 여기서 계자는 소진의 자이다. 후세에는 이말을 '공명을 꿈꾸던 자가 성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쓸쓸히 돌아온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후 소진은 심기일전하며 원대한 꿈을 갖고 더욱더 유세학(열국의 형세를 꿰뚫고 이해득실을 따져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이익을 챙기는 방법을 연구하는 실리주의 학문)에 매진했고.. 이때 동생 소대를 불러서 내가 출세해서 너의 장래도 열어줄터니 노자를 또 마련해 달라하며 읽던 책을 주며 잘 읽어 두라한다.. 결국 소대도 나중에 크게 된다.. ㅎ


이후 소진은 조나라 숙후에게 유세하는 과정에서 숙후의 동생 봉양군에게 실패하고.. 동쪽 연나라로 가서 연문후 앞에서 설파하며.. 유세를 하니 곧바로 도움을 받아서 다시 조나라 숙후를 찾아간다. 여기서 그는 진(秦)나라의 동진을 막기 위해서 함곡관 동쪽의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서로 도우며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파하며.. 조숙후에게 인정을 받고 종약장(從約長)으로 임명되어 조나라의 정승으로 발탁한다. 이후 소진은 강성해진 진에 맞서서 한, 위, 조, 제, 초나라를 찾아가며 6국이 상호 연합하여 강성해진 진(秦)을 제압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합종책(B.C.333년경,合縱策)을 제시하게 된다..

 

 

이로써 소진은 조나라 숙후를 비롯해서 6국 제후국들의 열렬한 환영과 후원 아래 6국 합종의 장이 되어 한동안 반진 연대를 이끌면서 영화를 누렸으니.. 그 규모와 권세가 한때는 주왕실의 위세를 뛰어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6국은 각자 동상이몽처럼 이해 관계가 처음부터 다르고.. 국내외 사정도 상이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B.C.318년에 와해되고 만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결합시켰기 때문에 내부적인 결속력이나 안정성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합종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이런 종약을 깨기 위해서 끈질긴 물밑 작업을 한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소진과 동문수학했던 장의였다..

 

장의(張儀)는
먼저 출사한 소진과 동문수학했지만 항상 자신이 소진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초나라에 식객으로 있을때 소양이 갖고 있던 화씨벽을 훔친 혐으로 곤장을 맞고 쫒겨난다.. 그후 그는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실패하자 소진이 있던 조나라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괄시를 당하며 쫓겨나서 진나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은 장의를 진나라로 들여보내기 위한 소진의 배려였던거.. 결국 장의는 진나라에서 둥지를 틀며 제일 먼저 손을 쓴것은 위나라의 환심을 사는데 주력하며 연나라와는 인척관계를 맺는등 종약을 깨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이때 소진은 제나라 제선왕이 연나라가 진나라와 혼인한것을 꽤심히 여기며 연나라를 공격하자 소진은 제선왕을 찾아가 연나라 공격의 부당성을 설파하며 제나라의 국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이때 선왕에 이어 등극한 민왕마저 소진을 중용하자 이에 시기한 제나라 대부들이 자객을 고용해서 소진을 죽이고 만다.. 하지만 자기를 죽인 자객을 잡기위한 유언책으로 혼자만 죽지 않았으니.. 마치 오기처럼.. ㅎㅎ

이렇게 소진이 죽으면서 와해된 합종책은 장의가 제후국들을 종횡무진 찾아다니며 6국의 종약을 깨고 마는데.. 이때 초회왕은 장의에게 농락당하는 수모를 당하지만 초나라는 진나라의 우호국이 된다.. 이렇게 장의는 소진과는 다르게.. 6국이 각각 개별적으로 진과 동맹함으로써 다른 제후국을 제압하고 자국에 대한 진의 공격을 유보시키려는 내용의 연횡책을 주장하며 진나라 혜문왕 시절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혜문왕에 이어 등극한 진무왕은 세치혀를 놀리는 장의의 잔재주를 싫어했는데.. 장의는 자신을 싫어하는 제나라를 공격케 만들기 위해서 위나라로 보내달라 요청하면서 그는 위나라로 가 정승이 돼서 1년만에 죽고 만다.. 하지만 장의의 뛰어난 능력과 수완 덕분에 계속 성공을 거둠으로써.. 진나라가 전국 통일의 기본적인 밑거름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마천 태사공은 이 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삼진(三晉)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에 능한 유세객들이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며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부분 삼진출신이다. 장의의 계책은 소진의 것보다 더 교활한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소진을 더욱 미워한다. 그 까닭은 그가 먼저 죽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두 사람 모두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