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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본문

Welcome to green life/+ 꿈은현실이될수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김민섭 [Dr. rafael] 2010. 3. 2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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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숨막히는 일상, 김민섭 주)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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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 친다.

내가 그린 꿈의 새는 날아가서 내 친구를 찾아 내었다. 나에게 가장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답장이 왔다. 나는 교실의 내 자리에서 수업 사이의 휴식 시간에 책갈피에 쪽지가 끼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수업 시간 중에 반 친구들이 서로 몰래 편지를 전할 때 쓰는 방식으로 접혀 있었다.

나는 누가 그 쪽지를 보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급우의 아무와도 그런 편지 교환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기고 그런 장난에 나는 가담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쪽지를 읽지 않은 채 책갈피 속에 끼워 두었다. 수업 중에 그 쪽지가 우연히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 종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것을 펴보았더니 몇 마디의 말이 그 속에 씌어 있었다.


나는 그 종이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그 중에 한마디에 끌려들어 깜짝 놀라서 읽었다. 내 가슴은 냉기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운명 앞에서 오그라들었다.

-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

나는 몇 번이고 그 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그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새에 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내 그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나를 이해했고 나로 하여금 해석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아브라삭스란 무엇일까?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일도 없었고 읽은 일도 없었다.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다!'

수업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시간을 흘러갔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전 중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얼마 전에 대학에서 온 조교가 그 시간을 맡고 있었다. 그는 매우 젊었고 우리에 대해서 조금도 일부러 위엄을 갖추려 하지 않았기에 인기가 있었다. 이 수업은 내 마음에 드는 몇 개 안되는 과목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내 생각은 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전에 데미안이 종교 시간에 한 말이 얼마나 옳은 말이었는가를 여러 번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한 의지로 바라고 있는 것은 꼭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수업 도중에 어떤 생각에 몹시 골몰하고 있으면 틀림없이 이 교사는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 주의가 산만하거나 졸고 있으면 선생은 갑자기 그 학생 옆에 와 있었다. 그런 일은 나도 몇 번 겪었다. 그러나 정말로 생각에 잠기어 있거나 정말로 생각 속에 빠져 있을 경우 나는 보호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강한 시선에 관해서도 나는 실험을 해보았고, 그것이 정말인 것을 알았다. 전에 데미안이 있을 때는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종종 사람이 시선과 사고력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상태로 나는 지금 앉아 있었고 헤로도투스며 학교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의식 속에 선생의 목소리가 섬광처럼 내 의식 속에서 들어왔고 나는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불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그 목소리는 크게 '아브라삭스' 라고 말했다.

앞부분은 듣지 못한 설명을 폴렌 박사는 계속했다. "우리는 그 종족의 세계관과 고대 문화의 신비주의적 결합을 합리적 견해의 입장에서 보듯이 그렇게 소박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의미로서의 학문이란 고대에는 도대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 신비주의적 진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더러는 마술과 유희가 생겨났고, 그것은 종종 사기와 범죄로 연결되는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까 예를 든 아브라삭스 같은 것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그리스의 주문(呪文)과 결부시키고, 그것을 오늘날 미개 민족간에 더러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일종의 마귀의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아브라삭스는 보다 의미 있는 무엇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예를 들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과제를 가진 어떤 신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집이 작은 이 박식한 남자는 계속해서 세련된 말투로 열심히 얘기했으나 아무도 별로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나도 그 이름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내 주의를 나 자신 속으로 집중시켰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것' 이라는 말이 내 속에서 울렸다. 바로 이 점에 나는 생각을 결부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우정이 마지막 시기에 데미안과의 대화에 의해서 나에게 친숙해진 사상이었다. 그 당시에 데미안은,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고 있는 신을 가지고 있으나, 그 신은 세계의 제멋대로 절단된 절반- 그것은 공적인, 허용된 '밝은' 세계였다- 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세계를 전체로서 숭배할 수 있어야 하므로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신을 갖거나 또는 신에 대한 숭배와 함께 악마에 대해서도 숭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아브라삭스가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인 것이다.

얼마 동안 나는 대단히 열심히 그 흔적을 더듬어 갔으나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을 모조리 뒤져서 아브라삭스를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그러나 본질은 이런 종류의 의식적이고 직접적인 모색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이런 모색에서 우리는 언제나 손 안에서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 진리를 발견할 뿐이니까.

내가 얼마 동안 그처럼 많이 그리고 열중했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이제는 차차 가라앉아 버렸다. 아니 그 여자의 모습은 서서히 나로부터 멀어져 점점 지평선에 가까워지고 그림자같이 멀고 퇴색되고 말았다. 그녀는 이미 내 영혼을 더 이상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제 다시 마치 몽유병자처럼 특이한 방법으로 나의 껍질 속에 숨어있던 짜놓은 생활 속에 한 새로운 활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동경이 내 속에 피어났다. 아니 그것은 사람에 대한 동경, 성(性)의 충동이었다. 나는 그 충동을 얼마 동안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배에 의해서 해소시킬 수가 있었으나, 지금 그것은 새로운 모습과 목적을 요구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충족이 오지 않았으며, 진정한 동경을 속이고 내 친구들이 만족하고 있는 소녀들에게서 나도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전의 어떤 때보다도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다시 많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밤보다는 낮에 더 많이......


온갖 마음이 모습과 형태와 소망이 내 마음 속에 솟아오르고 나를 외부 세계로 잡아당겼기 때문에, 나는 현실에 대해서보다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모습들과 꿈과 그림자들과, 보다 진실하게 보다 생기있게 교제를 했고,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떤 특수한 꿈, 또는 환상과 유희가 자꾸 반복되어 나에게 찾아 왔고, 그것은 나에게 의미깊은 것이 되었다. 이 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꿈은 대강 이러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에는 파란 바탕 위에 노란 빛으로 가문(家紋)인 새가 그려져 있었다- 집 안에서 어머니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나 내가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포옹하려고 하니까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키가 크고 힘있게 생겼으며, 막스 데미안과 비슷했고, 내가 그린 그림과도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고, 힘있게 생겼는데도 매우 여성적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나를 끌어당기고 온몸이 떨리는 애무 속에 나를 받아들렸다. 쾌락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고, 포옹은 예배이며 동시에 범죄이기도 했다.


나를 껴안은 이 모습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내 친구 데미안에 대한 추억이 너무 많이 나타나 있었다. 그 사람의 포옹은 온갖 외경심에 벗어나는 불순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 없는 행복을 뜻했다. 나는 이 꿈에서 깊은 행복감을 안고 깨어나고, 때때로는 또 끔찍한 죄를 저지른 것 같은 양심의 가책과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깨어났다.

다만 서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 완전히 내면적인 영상과 찾아야 할 신에 관해서 외부 세계로부터 나에게 온 암시 사이에 어떤 결합이 성립되게 되었다. 그 결합은 이윽고 보다 가까워지고 친해졌으며, 나는 내가 바로 이 예감의 꿈 속에서 아브라삭스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이고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얽힌, 그리고 가장 섬세한 순수함에 의해서 깜짝 놀라는 깊은 죄악- 이러한 것이 나의 사랑의 꿈의 모습이었고 또한 아브라삭스의 모습이었다. 사랑은 내가 처음에 두려워하며 느낀 것 같은 동물적인 어두운 본능도 아니었고, 또한 내가 베아트리체의 모습 속에서 구현시켰던 것과 같은 경건하고 정신적인 숭배의 감동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두가지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면서 악마였고, 여자와 남자를 한 몸 속에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면서 짐승이었고, 최선이면서 동시에 최악이었다. 이 모든 것을 살도록 나는 운명지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내 低資繭箚 생각되었다. 나는 그것을 동경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으며 끊임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내년 봄에 김나지움을 졸업하면 대학에 갈 예정이었으나, 나는 아직도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입술 위에는 옅은 수염이 자랐고 내 키는 다 컷으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못잡고 있었고 목적도 없었다. 뚜렷한 것은 다만 한 가지였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와 그 꿈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이 인도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웠으며 나는 매일 그것을 거부했다. 어쩌면 나는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는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 할 수 있다. 약간의 근면과 노력만 있으면 플라톤도 읽을 수 있고, 삼각함수의 숙제도 풀 수가 있고, 화학 분석도 할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만은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목적을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이 하듯이 내 앞에 그것을 그리는 일만은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교수나 판사나 의사 또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얼마나 시일이 걸릴 것이며 그것이 주는 이익이 무엇인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것을 지금 알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나는 몇 년 동안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아무 목적에도 도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또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이 나쁘고 위험하고 끔찍한 목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내 내부로부터 스스로 쏟아져 나오려는 것만을 잘 알아 보려고 한 것인데, 왜 그것은 그다지도 힘든 일이었을까? 나는 꿈 속에 나타난 힘찬 사랑의 모습을 여러 번 그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만약 그것을 그릴 수 있었다면 나는 그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다만 그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에 열중하였던 몇 주일, 몇 달을 지배하던 평온한 고요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하나의 섬에 도착했고 평화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언제나 그랬었지만, 어떤 상태가 나에게 정다운 것이 되고 어떤 꿈이 나에게 쾌감을 주는 순간 그것은 벌써 시들고 흐려지고 마는 것이었다. 사라져버린 것을 갈망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지금 충족되지 않는 욕망과 긴장된 기대의 불길 속에 살고 있었고, 그 상태는 나를 종종 완전히 사납게 또 거칠게 만들었다. 나는 꿈 속의 연인의 모습을 종종 지나치게 생생하고 분명하게 보았다.


그 모습은 나 자신의 손보다 더 뚜렷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과 얘기하고 그 앞에서 울고 그녀를 저주했다. 나는 그 모습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나는 그것을 연인이라고 불렀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성숙한 입맞춤을 예감했다. 나는 그것을 악마, 매춘부, 흡혈귀, 또는 살인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를 가장 섬세한 사랑의 꿈 속으로 유혹하는가 하면 황페하고 나쁜 행위로 유혹했다. 그에게는 지나치게 좋은 것도, 고귀한 것도 없었고 또 나쁘고 저속한 것도 없었다. 그 해 겨울 동안,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적인 폭풍우 속에 살았다.


고독은 이제 나에게 습관이 된 지 오래되어 그 고독으로 인해 괴로워하진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또 그 새와 같이 살았고, 내 운명이며, 연인인 저 커다란 꿈의 모습과 살았다. 그것들 속에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위대함과 광대함을 향하고 있었고, 모두가 아브라삭스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꿈이나 내 공상의 어떤 것도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아무 것도 나는 부를 수가 없었고, 아무 것에도 내가 마음대로 색채를 더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와서 나를 데려갔다. 나는 그들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살았다.


외적으로 나는 안전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인간에 대해서는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내 동급생도 그것을 알고 그들은 나에게 은연중에 존경을 보였는데 그것은 나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의 대부분을 매우 잘 통찰할 수가 있었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때때로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럴 마음이 내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언제나 나 자신을 생각했다. 나는 진실된 생활 속에 살아 볼 것을, 또 나의 내부로부터 무언가를 꺼내서 세계에 줄 것을, 세계와의 관련 속에, 투쟁 속에 들어설 것을 몹시 갈망하게 되었다. 때때로 저녁 거리를 방황하다가 마음의 동요 때문에 자정까지 귀가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종종 생각했다. 지금 바로 나의 연인이 나를 만나기 위해서 저 길모퉁이를 돌고 있고, 유리창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고, 때때로 나는 이 모든 일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럴 때의 나는 언젠가 자살을 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 당시 나는 기이한 피난처를-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우연의 힘으로 찾았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은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욕망과 필연성이 그를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시내를 산책하는 동안 어느 교외의 작은 교회로부터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두서너 번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멈춰서서 듣지는 않았다. 다음 번에 내가 그 앞을 지나갔을 때 또 그 오르간 소리가 났다. 나는 바하의 곡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문 앞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그 골목에 거의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교회 옆의 돌 위에 앉아서 외투 깃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크지는 않지만 좋은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였다. 그리고 그 연주법이 또한 이상했다. 그 음악 소리는 특이했고, 마치 기도처럼 울리는 매우 개인적은 의지와 완강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런 느낌을 가졌다. 저 연주자는 이 음악속에 이 보물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두들기고 애쓰는 것이라고...... 나는 기교적인 의미에서의 음악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영혼의 바로 이러한 표현을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하였고 음악적인 것을 당연한 무엇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연주자는 바하에 이어서 어떤 현대적인 곡을 연주했다.

그것은 막스 레거의 곡 같기도 했다. 교회는 거의가 캄캄했다.

다만 아주 엷은 광선 한 줄기가 바로 옆의 유리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오르간 연주자가 나오는 것이 보일 때까지 왔다갔다 거닐었다. 그는 젊은 남자였다. 그러나 나보다는 나이가 들었고 키가 작고 네모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거의 불쾌한 듯한 빠르고 힘찬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때때로 저녁때에 교회 앞에 앉거나 거닐었다.


언젠가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반 시간 가량 추위에 떨면서, 그러나 행복하게 의자에 앉아, 위에서 오르간 연주자가 희미한 가스등 밑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그는 연주하는 음악 속에 있었고, 나는 연주하는 소리만을 들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음악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았고, 어떤 신비스러운 영관을 가진 것처럼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것은 신앙심에 넘쳤고 헌신적이었고 경건했다.

그것은 교회의 신자들이나 신부님과 같은 경건이 아니라 중세기의 순례자나 거지와도 같은 경건, 온갖 종교를 초월한 세계 감정에 대한 남김 없는 헌신의 경건이었다. 바하 이전의 대가들의 작품이 자주 연주되었고, 옛날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품도 연주되었다. 그것은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그 연주자가 영혼 속에 갖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경, 세계의 가장 깊은 인식과 세계에의 과격한 고별, 자기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해 타는 듯한 갈망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헌신의 도취와 경이적인 것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를 몰래 따라갔을 때, 나는 그가 멀리 변두리에 있는 작은 술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그를 똑똑히 보았다. 그는 작은 방안의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검은 모자를 쓴 채 포도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바로 내가 기대했던 바와 꼭 같이 약간 야성적으로 보였고, 탐구자와 같았고, 고집장이같이 완고하게 보였고, 의지가 굳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입가는 부드럽고 어린애다웠다. 남성적이고 강한 요소는 눈과 이마에 전부 깃들어 있었고, 얼굴의 아래 부분은 부드럽고 미숙했으며, 억제되지 않았고, 더러는 유순하게 보였다. 결단력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턱은 이마와 눈에 비하여 소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내 마음에 든 것은 오만과 적의에 넘친 그의 흑갈색 눈이었다.


나는 말 없이 그의 앞에 앉았다. 술집에는 우리 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쫓으려는 듯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지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마침내 그는 불쾌한 듯이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요? 나 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소?" "아무 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벌써 많은 것을 당신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럼 당신은 음악 애호가시로군요? 나는 음악을 애호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을 느낍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연주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저 밖에 있는 교회에서." 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을 귀찮게 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당신한테서 무엇을 찾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무엇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당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언제나 문을 잠가 놓는데."

"최근에 당신은 잠그는 걸 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에 앉을 수 있었지요. 그 외에는 밖에 서 있거나 돌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요? 다음 번엔 들어오시오. 그 편이 덜 추우니까. 문을 노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힘껏 노크하시오. 그러나 내가 연주하고 있는 도중에는 안 됩니다. 자, 그럼 이제는 말해 보시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요? 당신은 아주 젊은 청년이군요. 고교생이거나 대학생 같은데, 음악가요?" "아닙니다. 음악을 듣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특히 당신이 연주하시는 것 같은 아무 제한을 받지 않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런 음악에서 한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흔들고 있는 것 같은 작곡가의 영혼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음악은 내 마음에 듭니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인데 비해 음악은 가장 도덕적인 면을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는 그렇지 않은 무엇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도덕 밑에서 언제나 괴로움만 받아 왔습니다. 나 자신을 잘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만- 동시에 신과 악마일 수 있는 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 신이 전에는 있었대요.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어요."


음악가는 폭넓은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넓은 이마 위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리고 낮고 긴장된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신의 이름은 무엇이요?"

" 그 신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름 뿐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라삭스입니다." 음악가는 마치 누가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의심에 찬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럴 줄 알았지. 당신은 누구요?"

"나는 김나지움 학생입니다."

"어떻게 해서 아브라삭스에 관해서 알았지요?"

"우연히......"

그는 테이블을 탕 쳤고 그의 술잔에서는 술이 흘렀다.

"우연이라고! 엉터리 같은 수작을...... 젊은 친구! 아브라삭스를 우연히 알게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도 짐작할 거요. 그 신에 관해서 내가 좀 더 얘기해 드리지. 나는 그에 관해서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는 입을 다물었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내가 기대에 넘친 눈초리로 바라보았더니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안돼, 여기서는! 다음 번에. 자 이걸 드시오!" 그러면서 그는 벗지 않고 있었던 외투의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몇 개의 군밤을 꺼내서 나에게 던졌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매우 만족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 먹었다.

"자!" 그는 잠시 후에 속삭였다. "그에 관해서 어떻게 알았지요?"

나는 그에게 숨김없이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나는 혼자였고 불안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때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매우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내가 믿고 있던 어떤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무엇을 그렸습니다.

새였어요. 세계로부터 빠져나가려는, 그것을 나는 그 친구에게 보냈지요. 얼마 후 내가 더이상 그 생각을 잊고 있을 때 한 장의 종이가 내 손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군밤을 까서 포도주의 안주로 먹었다.

"한잔 할까?" 라고 그가 물었다.

"감사합니다만 안하겠어요.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약간 실망한 듯이 웃었다.

"좋으신 대로. 나는 당신과 다릅니다. 여기에 더 머물러 있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며칠 후 다시 오르간 연주가 끝나고 나와 함께 걸어갈 때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는 나를 오래 된 골목 안에 있는 커다란 낡은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크고 약간 어둡고 잘 정돈되지 않은 방에서는 한 대의 피아노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암시하는 것이라곤 없었고 커다란 책장과 책상이 그 방에 학자다운 맛을 주고 있었다.


"책이 참 많군요!"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 중의 일부는 내 아버지의 장서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그들에게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집에서는 내 친구라면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나는 버림받은 자식이오. 아시겠소? 내 아버지는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 도시의 유명한 목사이며, 설교자지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정확히 아시도록 말씀해 드리면- 그의 재능 있고 장래 유망한 아들이었으나 탈선해서 약간 돌아버린 놈이지요. 나는 신학도였는데 국가 시험 직전에 그 건실한 신학대학을 그만두었어요. 내 개인적인 연구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아직도 신학도인 셈이요. 매번 어떤 신을 생각해냈는가는 나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흥미있는 문제요.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음악가입니다. 그리고 아마 오르간 연주자의 조그만 자리를 얻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다시 교회에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책표지를 훑어 보았다. 작은 전기 스탠드의 희미한 불로 볼수 있는 한에서 그것은 라틴어, 그리스어, 헤브라이어 등의 제목이었다. 그 동안에 내 친구는 어둠 속에서 벽가의 방바닥에 누워서 무얼 하고 있었다.

"이리 와요." 라고 그는 잠시 후에 불렀다. "철학을 좀 합시다. 입을 다물고 엎드려 생각하는 겁니다."

그는 성냥을 그어 그가 누워 있는 앞에 놓인 벽난로 속의 종이와 장작에 불을 지폈다. 불길은 높이 타올랐다. 그는 불길을 돋구어 일으켰고 아주 조심성 있게 장작을 집어 넣곤 했다. 나는 그의 곁에 가서 빛이 바랜 양탄자 위에 엎드렸다. 그는 불을 응시했다. 나도 불에 이끌렸다. 우리는 말없이 아마 한 시간쯤은 배를 깔고 엎드려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다가 가라앉고 구부러지고 펄럭거리고 꿈틀거리다가 마침내는 조용히 사그라지며 바닥으로 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배화교는 인간이 창안한 것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어." 라고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외에는 둘 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연기 속에서 한 형상을, 재 속에서 광명을 보았다. 한 번 나는 흠짓했다. 그가 송진을 한 덩어리 불길 속에 던져 넣자 가느다랗고 작은 불길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나는 불길 속에서 금빛 머리를 가진 새를 보았다.

사그라져 가는 벽난로 불길 속에서 금빛으로 타는 듯한 실이 그물이 되고 갖가지 글자와 형상이 나타나더니 온갖 얼굴과 짐승과 화초와 벌레와 뱀에 대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깨어나면서 그를 돌아보니까 그는 턱을 주먹으로 바친 채 열광적으로 몰두해서 재를 보고 있었다.


"가야겠습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시오, 안녕!"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등잔불이 꺼져서 나는 간신히 어두운 방과 복도와 층계를 더듬어 가며 도깨비굴 같은 집을 나와야만 했다. 길에 나와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낡은 집을 올려다 보았다. 어느 유리창에도 불이 안 보였다. 문패가 가스등 빛을 받고 문 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주임 목사 피스토리우스' 라고 그 위에 씌어 있었다.

집에 와서 비로소 저녁 식사 후에 내 작은 방에 혼자 않았을 때, 나는 아브라삭스에 관해서도 다른 무엇에 관해서도 피스토리우스로부터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우리는 열 마디도 주고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방문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더욱이 다음번에 그는 옛날 오르간 음악의 걸작인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 줄 것을 약속했다.


집에 와서 그와 함께 컴컴한 은둔자의 방바닥에 엎드려서 벽난로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는 나에게 첫번째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불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좋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것은 내 내부에 언제나 있었으나 내가 한번도 소중하게 생각지 않았던 여러 가지 성질을 강하게 했고 인정했다. 점점 나는 그것을 부분적으로나마 뚜렷이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언제나 자연의 특이한 모습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것은 관찰이라기보다 그들 자신의 매력, 그들의 뒤엉킨 깊은 언어에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속이 텅 빈 긴 나무의 뿌리, 광석에 나타난 갖가지의 줄무늬,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유리의 깨어진 곳-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나에게 때때로 크나큰 매력을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물과 불과 연기와 구름과 먼지가 나를 매혹했으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끌린 것은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색색가지의 반점이었다.

처음으로 피스토리우스를 방문한 후 며칠 동안 나는 다시 이 모든 것을 상기했다. 내가 그 이래로 느껴온 어떤 특수한 활기와 기쁨, 내 감정이나 스스로에 의한 상승 같은 것이 활활 타는 불을 오래 응시한 데서 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행위는 이상하게 기분 좋고도 풍요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나 자신의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발견했던 얼마 안 되는 체험에 또 하나의 체험이 끼어들었다.

그런 형상을 만든 자연의 의지와 우리는 내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서 그것을 우리 자신의 기분으로 우리 자신의 창조로 간주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흔들려 찢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 눈에 비친 영상이 외적인 인상에서 온 것인지, 내적인 것에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없어지는 어떤 기분을 알게 된다. 이 훈련으로 우리는 어디서보다도 단순하게, 쉽게 우리가 창조자라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의 영혼이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얼마나 부단하게 참여하고 있는가를 발견했다. 우리들 내부에 있는 신과, 자연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은 서로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신이었다. 외적인 세계가 몰락하면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그것을 세울 수가 있다. 우리의 내부에 있는 신과 자연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은 동일한 불가분의 신이었다. 외적인 세계가 몰락하면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그것을 세울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산과 강물과 나무와 잎, 뿌리와 꽃과 자연의 모든 현상은 우리들 내부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한 영혼으로부터 나온다. 그 영혼의 본질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때때로 사랑의 힘, 또는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그 후 몇 년 지나서 비로소 나는 나의 이 관찰이 어떤 책 속에 증명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쓴 것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침을 뱉은 담벽을 보는 것은 얼마나 깊은 자극이 되는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젖은 담벽의 얼룩 앞에서 나와 피스토리우스가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그 다음에 만났을 때 오르간 연주자는 나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는 인격의 한계를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들 인간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구별하고 있는 것만을 우리라고 생각하는 빗나간 인식을 하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만들어져 있으며, 우리는 각각 우리의 육체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의, 아니 더 먼 곳까지의 진화의 계보를 포함하고 있듯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체험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소. 여태까지 존재한 모든 신과 악마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것이든 중국인의 것이든 아프리카 흑인의 것이든 모두 우리 속에 함께 있고,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출구로서 존재하는 것이요. 만약 인류가 다 망해 버리고 한번도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보통 정도의 재능을 가진 어린아이가 꼭 한 명만 살아 남는다 해도 이 아이는 사물의 과정 전부를 다시 발견할 것이며, 그것은 신으로, 악마로, 천국으로, 계명과 금지로, 신구약 성서로 될 것이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하고 나는 반문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속에 벌써 완성된 것으로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잠깐만!" 하고 피스토리우스는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세계를 당신 내부에 그저 간직하고 있는 것과,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친 사람도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사상을 생각해 낼 수도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의 독실한 어린 국민 학생이 그노시스파 (Gnosis, 異端) 나 조르아스터교 (Zoroater, 二元敎) 에서 나타내는 신비적인 경위를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국 나무나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식의 첫 불꽃이 밝혀지면 비로소 그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당인은 설마 길가를 두 다리로 걷고 있는 동물을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요? 단지 그들이 똑바로 걸어가고 자식을 9개월간 임신하고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을 전부 인간이라고 생각지는 않겠지요. 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자들이 물고기나 양이나 벌레나 또는 거머리이고 또 얼마나 많은 자들이 개이며, 얼마나 많은 자들이 벌들인가를 알지 않습니까.

하기야 그들의 각자 속에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들이 이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라도 자각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이 가능성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대강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 대화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무엇, 완전히 의외이고 놀라운 무엇을 가져다 주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장 진부한 것까지도 낮은 소리로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면서 내 내부에 있는 바로 같은 장소를 자꾸만 때렸다. 그것은 모두가 나를 형성하도록 도와 주었고, 껍질이 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매번 나는 머리를 좀 더 높이 쳐들었고 좀더 자유로워졌으며 이윽고 나의 금빛 새가 아름다운 야생의 머리를 파괴된 세계의 껍질로부터 내밀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꿈을 이야기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 꿈을 해석할 줄 알았다. 한 신기한 예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꿈을 꾸었는데 난 꿈에서 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큰 힘에 의해서 공중에 내던져진 것이었다. 이 비행의 감정은 감명깊었다. 그때 나는 내 비행의 상승과 강하가, 호흡의 중지와 내쉬는 것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구제책을 발견했다. 이 꿈에 관해 피스토리우스는 말했다.

"당신을 날게 하는 그 힘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인류의 큰 재산입니다. 그것은 온갖 힘의 뿌리와 결함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그것은 끔직하게도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은 그처럼 나는 것을 포기해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법규가 정하는 데 따라서 보도를 거니는 편을 택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유능한 청년답게 계속 날아갑니다. 보십시오. 당신은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즉 당신이 점점 이 비행의 주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을 끌어가는 커다란 보편적인 힘에 미묘하고 조그마한 독특한 힘, 하나의 가관, 하나의 조종이 작용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 발견 없이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예를 들면 광인들이 그렇듯이.


당신에게 보도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보다는 더 깊은 예감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열쇠도 조종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득한 벼랑으로 떨어지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싱클레어, 당신은 그것을 해나가고 있어요. 그것도 썩 잘! 당신은 아직 모르지요? 새 기관 즉, 호흡 조절기를 가지고 날고 있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당신의 영혼이 그 심층에 있어서 얼마나 '비개인적' 인가를! 당신의 영혼이 이러한 조절기를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새 발견입니다. 그것은 다만 빌어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몇천 년 전부터 존재하니까요.


그것은 물고기의 평형기관, 즉 부레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몇 종류의 특이하고 옛스러운 물고기의 종류가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는 부레가 일종의 허파처럼 되어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호흡 기능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꿈에 '비행사의 부레'로 사용했던 허파와 조금도 틀린 점이 없이 똑같은 것이지요!"

그는 나에게 동물학 책을 한 권 주면서 물고기의 이름과 그림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상한 전율감을 느끼면서 내 내부에 있는 초기 진화의 단계로부터 남아 있는 한 기능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