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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오덕(厚吾德)과 추야우중(秋夜雨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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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오덕(厚吾德)과 추야우중(秋夜雨中)

김민섭 [Dr. rafael] 2010. 11. 17. 21:30

 

 

厚吾德:나의 덕을 두텁게 한다.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

세상에 알아 주는 이 없네.
 창 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추야우중(秋夜雨中)'은 5언 절구(五言絶句)이다.

세상에 자기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절대 고독감을 표현했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秋風唯苦吟)/세상엔 날 알아주는 이 없네(世路少知音)/창밖엔 삼경의 빗소리(窓外三更雨)/등불 앞엔 만리로 내닫는 이 마음(燈前萬里心)." 〈동문선〉에는 '세로'(世路)가 '거세'(擧世)로 씌어 있다. 그의 120여 편에 달하는 시 가운데 심상의 전개나 구조적인 긴밀성이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꼽히며, 세간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시상(詩想)은 제1구 '추풍유고음'에 집약되어 있고, 그 고독의 궁극적 원인소(原因素)는 제2구의 '소지음'이다. 제3구의 '삼경우'는 곧 시인의 고독한 눈물이요, 제4구의 '만리심'은 세상과 어그러져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시인의 방황하는 심사이다. 특히 제3·4구는 외곽과 내곽, 시간과 공간, 청각과 시각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인의 걷잡을 수 없는 고독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향수를 달래며 지은 것으로 보기도 하나, 귀국 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여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 즉 중국에서 마음껏 문재(文才)를 떨치고 귀국한 최치원이 헌강왕이 죽은 뒤에는 태산군(太山君)·태수 등 외직으로 전전하고, 진성왕에게 당시 국정을 바로잡을 개혁안을 담은 시무책(時務策)을 올렸으나 실행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은거에 들어갔던 사정을 감안할 때 제 역량과 포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당대 현실과의 부조화가 시인으로 하여금 이 시를 짓게 만든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며,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859년(경문왕 9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한 다음 관리가 되었다. 879년(헌강왕 5년)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 토벌에 참가하여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지어 이름을 날렸다. 885년에 귀국하여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등의 벼슬을 거쳐 여러 고을의 태수를 지냈다. 894년(진성 여왕 8년)에 시무 10조의 정치 개혁안을 올려 아찬이 되었고, 그 뒤 세상의 어지러움을 비관하여 각지를 떠돌아다니다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그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신라 최대의 문장가로 당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의 벼슬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