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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와 노현숙의 시 세계

김민섭 [Dr. rafael] 2011. 1. 8. 15:59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은 무엇으로 존재합니까

 

들풀의 향기와 바람이 있겠지요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하루하루를 휘어 감고 있겠지요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처난 나는

 

하루하루가 봄날처럼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애/노현숙

 

  

 

106

 

 

[참고] 노현숙의 신작시


누룽지를 삼키는 오후의 여자

겨울 눈으로 갠 하늘
너무나 깊은데
알프스를 떠오르게 하는
오후의 앞산이
목화송이로 피어 있습니다
햇빛 속으로
햇살이 하얗게 웃고
빈 공간 속 오후의 여자는
점점 눈이 흐려져
서둘러 커튼을 내리는 것이
일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석류알 같이 탐스러운
전기밥솥 하얀 밥알
등 뒤로 밀어내고
검게 탄 돌솥 누룽지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오후의 여자는
삼키고 또 삼키고 있습니다
기억조차 없는 혀의 미각
방향을 잃고
방황을 하며
언제부터인가
싫지 않은 검게 탄 돌솥 누룽지가
입 안에서 저녁노을로
웅크리고 누워있다는
그 한 생각이
채 마르기도 전
한번쯤은 숨기고 싶던
수태를 상실한 오후의 여자
서두르지 않으며 잊혀졌던
묶음의 추억을 불러모아
웃음털며
울음털며
느림의 두 손이 빠르게 감싸고 있습니다
울어버리려다
웃어버리는
누룽지를 삼키는 오후의 여자.


안개꽃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리움처럼
번지는
안개

망설이는
바람 속으로
별이 되어

황홀하게
꺾어지고 싶은

꿈.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었다

새벽 하늘이
이마 가까이 내려앉았던
희망처럼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었다

눈가에 간절히 매달린
소망처럼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었다

겨울 골목길이
뒹구는 휴지와 함께
메마른 하루가
삭막으로 길게 누운 채
짧아진 겨울 하늘을
서서 바라본다

그리운 이가 그리워
가슴이 아려
금방 쏟아질 것 같은
울음처럼
칼날 바람에 떠는
겨울 나뭇잎 같은
절망처럼
이렇게라도 살아야 할 것인가

얻는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질수록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다가
날마다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되고 싶었다

집착


주름진 입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백색 타이레놀
찢어지는 통곡으로
아우성 치며 허물어집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세상을
소리없이 부드러운 세상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애터지게 부르짖는 집착이
숨 막히는 겨울 날
두 팔을 펼치고 펼쳐
온몸으로
두 손으로
으깨어지도록 내려칩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세상을
소리없이 부드러운 세상을

잃어버린 하늘을 바라봅니다
새떼들이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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