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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22과 빛의 필요성 본문
제 22과 빛의 필요성
성경말씀; 눅 8;16-18,
성구: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눅 8;16,)
<서론>
등불은 당시의 모든 것을 밝게 하는 빛입니다. 빛을 두는 곳은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둡니다. 왜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빛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즉 빛을 필요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1. 들어가는 자가 보게 함(16, 하)
본문에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자들이라는 것은 빛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등불은 실내에 빛을 비치는 것입니다. 실내에 있는 사람이 등불을 켜지만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면 빛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빛은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등불을 컨 곳에만 빛이 있습니다. 등불을 커지 않는 곳에는 빛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곳이 빛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등불을 커는 것은 빛이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며, 빛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빛으로 들어와서 빛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인 등불을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실내에 컬 수 있어야 하며, 빛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밝은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두어 모든 곳이 비쳐질 수 있도록 비춰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도 예수님을 통하여 비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곳에 비쳐질 수 있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빛은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비처야 하며, 모든 사람이 밝은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비칠 수 있도록 빛을 필요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하고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게 비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그 빛을 보는 것입니다. 그 빛을 본다는 것은 빛이 비춰지면 물질에 빛에 반사하는 물질이 빛을 반사하여 실내가 환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에 반사하는 물질이 많으면 빛을 조금 비춰도 밝고 빛을 반사하는 물질이 적으면 빛을 많이 비춰야 밝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거울이 많은 방은 더 밝습니다. 이처럼 빛은 사람을 비추는 것이지만 사람은 빛이 물건에 반사 되여 사람이 그 빛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도 눈을 뜨느냐, 감느냐에 따라서 빛을 밝게 볼 수도 있고 어둡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등불을 켜서 빛을 비쳐야 하지만 그 빛이 사람에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빛이 잘 반사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사람도 그 빛은 잘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빛인 예수님이 있어도 보여 질 수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이 비춰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빛을 보게 하도록 항기 위하여 빛이 잘 반사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빛을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2. 감추인 것이 알려짐(17,)
본문에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 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하고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빛을 비추이면 숨은 것과 감추인 것이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이 말은 빛은 숨기거나 감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숨기거나 감추지 않아도 필요 없는 것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들은 당연히 등불인 빛이 있으므로 보고 없애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 떨어졌다든가, 먼지가 묻었다든가, 쓰레기가 생겼다든가..... 등과 같이 빛이 없으면 몰랐던 것들이 빛이 있으면 알고서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나 숨기거나 감추는 것은 몰래 나둔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빛이 비치면 몰래 감추거나 숨긴 것은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에서 사는 사람은 어쩔수 없이 생긴 것들은 당연히 치워야 하지만 숨기거나 감춘 것은 드러나거나 나타납니다. 등불이 없으면 숨기거나 감출 수 있지만 빛이 있으면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빛이 없이 사는 사람은 숨기는 생활을 하려고 하고 감추는 생활을 하려고 하지만 빛이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숨기거나 감추는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빛이 있는 사람들은 숨기거나 갘추지 않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등불이 있는 빛이 있는 생활을 하여 숨기거나 감추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숨은 것이 장차.... 감추인 것이 장차... ” 하고 있습니다. 숨은 것과 감추인 것은 등불인 빛이 비치면 보통 지금 있는 것이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지금 없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장차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물속에 있는 것이 지금은 안보이지만 빛에 오래 있으면 물이 증발 되여 나타나게 되며, 사람의 몸속에 있는 것은 안보이지만 과학이 발달하므로 빛으로 볼 수 있으며, 작아서 안 보이는 것도 강한 빛이 연구 되어 보일 수 있게 될 수 있으며.... 등과 같이 지금은 숨겨지고 감춰진 것 같아도 언젠가는 다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사는 사람은 숨기거나 감추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빛으로 사는 우리는 숨긴 것과 감춘 것이 장차 언잰가는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을 알고 공개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3. 삼가라는 교훈을 줌(18,)
본문에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 하고 있습니다. 빛은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의 정보는 무한합니다. 옛날에는 빛이 불과 같이 연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였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빛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빛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풍요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라는 말은 빛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빛에 대한 정보를 잘 듣는 것은 삼가는 것입니다. 삼가라는 말은 너무 지나치지도 말고 너무 모자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빛의 정보는 무한하기 때문에 빛을 너무 지나치게 사용하면 피해를 보고 빛을 너무 사용하지 않으면 미개해지는 것입니다. 에를 들면 빛이 너무 밝으면 눈이 나빠지며, 빛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편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빛에 대한 정보를 잘 듣고 삼가서 빛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빛에 예수님에 대하여서도 잘 듣고 삼가서 많은 은혜 속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빛에 정보를 듣고 삼갈 수 있는 빛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고 있습니다. 있는 자는 받는다는 말은 빛에 대한 정보를 듣고 삼가서 빛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있는 자가 되어 받고 빛에 대한 정보를 듣지 않고 삼가지 않아서 빛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 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빼앗기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빛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받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빛을 잘 알아 있는 자가 되어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탈무드입니다.
어떤 사람이 캄캄한 밤에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 편에서 장님이 등불은 들고 걸어 왔습니다.
그 사람이 장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장님인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니지요?’
그러자 장님은
“내가 이 등불을 듣고 걸어가야 눈 뜬 사람들이 장님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빛은 보지 못하는 장님이 등불을 들고 다니는 필요가 있듣이 빛은 들어가는 자가 보고 감추인 것을 알려주고 삼가라는 교훈을 주는 다양하게 사용 되는 것을 알아 우리는 영, 육 간에 빛을 잘 활용하는 축복 된 생활을 합시다.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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