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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사람,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주는사람을 위해 죽는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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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사람,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주는사람을 위해 죽는다

김민섭 [Dr. rafael] 2020. 1. 31. 09:00

 

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전국책-

 

 아아,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죽고[士爲知己者死],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이를 위해 화장 한다[女爲悅己者容].

 

 현대에 와선 (남녀 평등, 인권 신장 등으로) 조금 다르긴 하지만

 )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면 예양(豫讓)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긴 일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은 예양을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 예양은 그들을 떠나 지백(智伯)이란 자를 섬기게 됐다. 지백은 진나라 육경의 한 명으로 세력이 강성하고 교만한 성품이었으나 예양은 극진히 예우했다.

그런 지백이 범씨와 중항씨를 제거하고 조양자(趙襄子)를 공격했는데,오히려 한나라 · 위나라와 연합한 조양자에게 패해 땅은 셋으로 공중분해되고 후손까지 끊어졌다. 이 정도로 분이 풀리지 않은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쓰며 설움을 분풀이했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예양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아 영혼이 부끄럽지 않게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산속으로 달아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를 저질러 죄수의 몸으로 궁궐로 들어가 화장실의 벽 바르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수를 품고 있다가 조양자를 찔러 죽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양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을 암살하려는 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막을 알아보니 바로 예양이 몸에 비수를 품고 자신을 죽일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었다. 그를 붙잡아오게 해 문초하자 예양은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랬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자 조양자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자 천하의 현인이라며 풀어주었다.

예양은 얼마 뒤 몸에 옻칠을 한 문둥이로 분장하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까지 바꾸어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한 채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했다.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 날 예양이 오랜 친구를 찾아가니 그 친구만은 예양을 알아보고는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조양자의 신하가 된다면 분명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정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텐데 왜 이런 추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느냐"고 충고했다. 그러나 예양은 친구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조양자가 측근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외출해 다리를 건너려 할 때 말이 갑자기 놀랐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예양이란 자가 다리 밑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아랫사람들을 시켜 찾도록 하니 숨어 있던 예양이 나타났다.

조양자는 예양을 호되게 꾸짖으며 "왜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다가 지백에게 몸을 맡기고,지백이 그들을 멸망시킬 때는 가만히 있더니 죽은 지백을 위해 이토록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예양은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했으므로 나도 그에 맞게 처신했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예우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조양자는 예양의 진심을 알았으니 더 이상 용서해주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병사들에게 그를 포위하게 했다.

그러자 예양은 자신이 지난번 암살하려 했을 때 용서해준 일에 감사하면서 조양자의 옷이라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조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크게 감탄하고는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베어버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던 그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몸을 꾸민다.

그만큼 사람들은 다른 이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심리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용인에 있어서 모든 경험의 총화이자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무릇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

이는 단순하지만 영원한 진리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덕성, 학식, 소질, 포부를 살펴봐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대단한 학식과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시 어느 나라에도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을 식별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여러 차례 탄식했다.

제나라에 북곽소北槨騷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냥그물을 짜고 짚신을 삼아 모친을 봉양했지만 항상 힘에 부쳤다.

어느 날 그는 안영을 찾아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인자함과 의로움을 흠모해왔습니다.

 

제 모친을 봉양할 만한 것을 빌리려 합니다."

안영은 사람을 시켜 창고에서 돈과 양곡을 꺼내 그에게 내주었다.

 

북곽소는 돈은 사양하고 양곡만 받아갔다.

얼마 후 안영은 제왕 경공(景公)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조정에 머무를 수 없다고 느낀 그는 조정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북곽소의 집 앞을 지나면서 안영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북곽소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안영에게 정중히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대왕의 의심을 받아 몸을 피하는 길이라네."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북곽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차에 오른 안영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도망자 신세가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정말 나는 사람을 알아볼 줄 모르는구나!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안영이 떠나자마자 북곽소는 즉시 친구를 찾아가 말했다.

"난 일찍이 안영의 인자함과 의로움을 존경해서 그에게 어머 님께 드릴 양식을 빌린 적이 있네.

 

제 부모를 모실 수 있게 해준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대신 져야 한다지.

 

지금 안영이 대왕께 의심을 받는다고 하니 내 생명을 걸고 옹호해드려야겠네."

북곽소는 의관을 단정히 하고 친구에게 보검과 대나무 광주리를 들게 한 뒤, 그를 앞장세워 궁궐에 갔다.

 

왕에게 소식을 전하는 신하에게 그가 간곡히 말했다.

"안영은 천하에 이름난 현자입니다.

 

지금 대왕의 의심을 받아 제나라를 떠나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나라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제 머리를 베어 안영의 결백함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어서 그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 머리를 베어 광주리에 담아 대왕께 올리게.

 

그리고 내 청을 말씀드려주게나."

북곽소는 말을 끝내자마자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베었다.

친구는 북곽소의 목을 광주리에 담고 신하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북곽소라는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사람을 위해 죽고자 합니다."

그도 말을 마친 다음 칼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이 소식을 전해듣고 크게 놀란 경공은 친히 마차를 타고 안영을 쫓아갔다.

 

그는 교외까지 쫓아가 겨우 안영을 따라잡고 다시 돌아오기를 청했다.

 

안영은 별수없이 경공과 함께 도읍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북곽소가 목숨을 바쳐 자신의 결백을 밝혀준 이야기를 전해듣고서 안영은 다시 탄식했다.

"나 안영이 도망자가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정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안영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짧음을 두 차례 반성한 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겸손이나 심지어 교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진정 어린 반성으로서 깊은 이치가 담긴 것이었다.

 

첫 번째는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이 밝지 못했음을 반성한 것이다.

 

그런 눈을 갖고 어떻게 군주를 보좌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눈이 있으되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군주를 보좌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니,

군주의 의심을 사고 도읍에서 도망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자신의 수양과 실력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탓했던 것이다.

앞의 예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일단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당연한 죽음으로 보답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위에 요순 같은 임금이 있으면 아래에 요순 같은 백성이 있고,

 

사람을 쓰는 데 능하면 도척같은 도둑도 충신이 될수 있다고 했다.

 

사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람 쓰는 방법만이 아니다.

 

옛 사람들이 경험은 상당히 성숙했고 풍부했다.

 

진작부터 그들은 사람을 쓰고자 하면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그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함을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명확치 않으면 방법을 강구해서 이를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알았다.

 

안영은 이를 매우 잘 이해했으니, 그는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11년 12월 9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