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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평양 기생 왕수복을 아시나요. 본문
혹시 왕수복(王壽福)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는가.
흔히 평양 기생이라 불리는평양의 권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여 최초의 유행가 가수가 되어 경성방송국(JODK)에서 일본 전역으로 최초 유행가 방송을 했던 신여성이었던 왕수복. 그녀는 잡지 ‘삼천리’ 주최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에서도 전체 1위를 차지한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정오에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경성에 내려가 저녁에는 다시 청중 앞에 설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요즘으로 치면 ‘효리’나 '원더걸스'와 맞먹는 인기를 누린 최고의 스타였던 셈이다.
왕수복은 권번 출신으로 조선 최고의 스타가 되어 2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이태리 성악까지 공부하여 국악에 양악을 접목시켰다. 우리 민요 아리랑을 메조소프라노로 불러 일본 아사히 신문을 통해 널리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에 빠져 그 모든 영광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직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귀국길에 오른다. 그 사랑하는 남자가 다름 아닌 '메밀꽃 필 무렵' 의 작가 이효석이었다. 모던 보이였던 이효석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으나 그들의 불 같은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이 그들의 사랑을 시샘했던 것일까? 이효석이 폐렴에 걸려 세상을 드는 바람에 그들의 사랑은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녀는 이효석의 부친과 함께 임종을 지켜보았다.
이효석을 잃고 컴컴한 어둠 속을 방황할 때 그녀에게 찾아온 동경에서 만났던 또 다른 남자, 경제학자였던 김광진이란 남자였다. 그녀의 인생에 운명 같은 사랑이 하나 더 남아 있었던 것일까? . 당시 김광진에겐 약혼녀가 있었는데 그 약혼녀는 다름 아닌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사슴이란 시를 쓴 노천명 시인이었다. 그러니까 왕수복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와 운명 같은 사랑을 하고 노천명 시인의 약혼녀와 다시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녀는 휴전이 된 후 북한의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 가수가 되고 그녀의 남편 김광진은 김일성 대학 교수,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장을 역임하며 북한 경제의 틀을 만들었다. 왕수복은 그 후, ‘조선해방 10주년 경축예술단’에 참가하여 당시 소비에트연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고, 특히 우즈벡 타슈켄트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연으로 조선 가요의 여신(女神)이라는 찬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그녀는 북한의 공훈배우가 되어 ‘윤이상음악연구소’ 등에서 활동했으며 북한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인 개인적인 창작으로 독창회를 여는 큰 영광을 누렸다.
특히 환갑에는 김일성 주석이 보낸 환갑생일상을 받았고, 팔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팔순 생일상을 받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죽어서는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평양의 권번 출신으로 2003년에 세상을 떠난 평양기생 왕수복이 생각난 것은 오늘이 6.25 전쟁 59주년이 되는 날이어서일까?
어떤 메뉴들이 있는지도, 같이 좀 알려주세요~
답변 내용
분당에 3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평양음식 전문점이 있어요~
할아버지 세대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평양음식 전문점인데요.
평양냉면, 어복쟁반, 녹두지짐은 전통적인 평양음식으로 이곳의 대표메뉴랍니다.
돼지고기가 큼직큼직하게 들어간 고소한 빈대떡도 별미에요.
만두전골은 평양음식이 싱겁다는 느낌이 드는 분들을 위해 좀 더 칼칼한 맛을 냈구요.
삼성점과 양재점 두 군대의 분점이 함께 운영중이에요~
백현중학교 근처에 있답니다.~
맛이 꽤 괜찮더라구요~
한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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