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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김민섭 [Dr. rafael] 2011. 10. 11. 22:30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텐더가 잔을 채워 가볍게 미끄러뜨린 글라스를 재빨리 왼손으로 낚아채서 즉시 입 안에 털어넣는 것.
서부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시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텍사스 주의 작은 마을, 총잡이들이 자주 드나들 것 같은 그런 바.
등자를 장식한 부츠의 발끝이 보인다.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총잡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카우보이모자를 쓴 얼굴이 절반 정도 보인다. 그는, 양쪽에 여닫을 수 있는 문을 힘차게 밀치며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카우보이모자를 손끝으로 치켜 올리면서 카운터 앞에 서자 위스키가 가득 담긴 글라스가 미끄럼을 타듯 가볍게 미끄러져 온다. 총잡이는 그것을 낚아채어 단숨에 꿀꺽.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술은 이런 식으로 마셔야 한다고 동경했다.
하지만 총잡이가 그런 식으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 낮은 위스키 때문일 것이다. 즉, 위스키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실 만한 고급 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바를 만날 수 있었다.
“옐로 로즈.”
바텐더가 글라스를 가볍게 밀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글라스를 포착, 단숨에 내용물을 입 속에 털어넣었다.
내가 옐로 로즈를 비우자 캐치한 볼을 재빨리 퍼스트베이스로 던지는 유격수처럼, 바텐더는 즉시 버번이 가득 담긴 글라스를 다시 한 번 미끄러뜨렸다. 쉬익, 착, 꿀꺽. 식도에서 위장으로 내려가는 뜨거운 열기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쉬익, 착, 꿀꺽. 바텐더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준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아, 기분 좋다. 정말 유쾌하다.
여섯 잔째를 비운 순간, 나는 보디에 강력한 일격을 맞은 것처럼 남자들의 팔꿈치에 의해 깨끗하게 닦여 있던 카운터에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 작가_ 니시카와 오사무 - 1940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으며, 사진가, 문필가, 화가, 요리연구가로 활동하고 있음. 『한식한채대전』, 『마리오의 이탈리아요리』, 『쾌락남의 요리―내장』 등 60권 이상의 저서를 출간함.
 
◆ 낭독_ 박경근 - 배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천년제국>, <삼월의 눈> 등에 출연.
◆ 출전_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나무발전소)
◆ 음악_ 심동현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세계 술맛기행 - 영국편

 

사하라에서의 열흘 동안,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이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열흘이나 계속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었다.

사하라로 출발하기 전에 몇 병의 위스키라도 가지고 갈까 망설였지만 문득 술을 한 번 끊고 지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그건 심리적 동요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막을 지나야 한다는 어떤 경건함, 혹은 엄숙함 같은 게 마음을 잔뜩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막에 대한 정신적인 흥분과 긴장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열흘이다. 내가 그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다니! 마치 메카를 순례하는 신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고 깊은 밤. 여느 때라면 술에 젖어 몽롱한 상태에서 밤을 보냈겠지만 지금의 내 머리는 지나칠 정도로 맑기만 하다. 한기가 강한 사막에서 차를 마시고 모닥불에 손을 녹이며 등을 짓누르는 듯한 머리 위 어두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 비틀거리며 사막을 방황한 뒤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에 도착한 순간, 주저하지 않고 퍼브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다지 시원하지도 않은 비터(bitter. 호프의 맛이 강한 맥주의 일종) 1파인트(pint. 1/8갤론)짜리 컵을 움켜쥐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한 잔 더. 그것도 카운터에 기댄 채 단숨에 들이켰다.

옆에 있던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영국인은 1파인트의 맥주를 그야말로 다도를 즐기듯 여유 있게 천천히 마신다. 그래서 한 잔을 마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술을 앞에 두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단숨에 두 잔이나 비워버리고 추가로 또 한 잔을 주문한 것이다. 근처에 있는 여자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런던의 퍼브는 어슴푸레하게 어둡고 빅토리아풍으로 이루어져 백 년이 지난 곳이 꽤 많다. 처음 뛰어들었던 퍼브도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곳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여섯 잔 정도 비터를 비운 후였다.

다음날부터 비틀거리며 거리를 지나다가 고풍스런 퍼브가 눈에 띄면 대낮이라도 상관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재미있게도, 고풍스런 퍼브에는 어디나 문 두 개가 있다. 따라서 문이 두 개 있는 퍼브는 꽤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영국은 상류사회에 속하는 사람과 노동자계급이 엄격하게 구별되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속하는 계급에 맞추어 두 개의 문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들어가게 된다. 즉, 손님들은 계급에 따라 각각 다른 문으로 들어가 각자의 방에서 맥주 등을 마셨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존재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불편한 쪽의 문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 퍼브도 많이 있다. 이것은 주인의 재량에 딸린 문제다.

퍼브의 선반에는 맥주나 위스키 등의 술 종류만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벼운 샌드위치를 비롯해서 튀긴 피시 앤드 칩스, 외국인들에게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소변 냄새가 나는 키드니 파이(Kidney Pie), 육류요리의 백미인 로스트비프, 훈제장어 등 다양한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퍼브에서는 영국의 전형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는 맥주를 한 손에 들고 가벼운 점심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런던의 뒷골목을 거닌 지 한 시간 정도, 다시 퍼브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또 1파인트의 맥주를 몸 안으로 흘려 넣는다.

거리의 분위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 종류에 따라 퍼브의 풍경도 차이가 있다. 동물이나 물고기가 그 종류에 따라 숲, 사바나, 얕은 바다, 깊은 바다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일찍이, 금융관계 사무실이 많은 도시에 위치한 퍼브는 높은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손에 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을 테지만 역시 그런 전형적인 젠틀맨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감색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우아한 어휘를 구사하며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퍼브는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단, 나처럼 독특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분 나쁜 태도를 보이는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한편, 페인트나 기름얼룩이 진 작업복을 입은 손님이 찾아오는 퍼브도 있다. 또는, 손님이 대부분 대학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퍼브도 있고 장사꾼만 드나드는 퍼브도 있다. 그러나 어떤 퍼브이건 과거에는 남자들만의 세계였는데 지금은 손님의 3분의 1이 젊은 여자들로 구성된 퍼브도 흔히 볼 수 있다.

 

영국도 변한 것이다. 닷새 정도 체류하는 동안, 사막처럼 메말라 있던 몸 구석구석에 맥주가 서서히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닷새 동안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셨을까. 그 덕분에 결국, 사막으로 출발하기 전의 술에 젖은 몸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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