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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중학교 동창들만 아는, 교정 신발이 피로 얼룩지도록 신고다녔던 불행했던 - 그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어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조금씩 펼쳐 본문

Welcome to green life/ + 네!! 저는..요?

중학교 동창들만 아는, 교정 신발이 피로 얼룩지도록 신고다녔던 불행했던 - 그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어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조금씩 펼쳐

김민섭 [Dr. rafael] 2009. 10. 13. 21:00

 


 

 요즘 나는 나의 삶에도

 

성공한 사람들이 외는 주문을 걸어본다.

 

 

 

나는 나의 능력을 믿으며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도 이겨낼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나를 만들 것이며

항상 배우는 사람으로서 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늘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새롭게 일할 것이며

어떤 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공시킬 것이다.

나는 항상 의욕이 넘치는 사람으로서

행동과 언어, 그리고 표정을 밝게 할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으로서 마음이 병들지 않도록 할 것이며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나이가 몇 살이든 스무살의 젊음을 유지할 것이며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나라에 보탬이 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나의 신조를 매일 반복하며 실천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부르는 그 순간까지

  

 

 

 

 

 

오늘의 행복한 경영 에서 -

 

.................................................................

 

 

다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그게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다리가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었는데,

 

번번이 그것이 꼬투리가 되었지요.

 

 

게다가 집안에 돈은 넉넉하지 않았는데 형제는 6남매

 

모두 초,중,고를 수원 또는 서울에 나와 공부, 꿈을 펼치려했고..

 

 

 

그런 와중에도 저는 줄곧 전체 수석의 성적을 이어가며 

 

졸업시 지역이냐 유학이냐 고교 선택시 어려움도 있었고요.

 

 

(재학중 전체 수석, 학교 설립자 표창장, 그리고 우등상장 대표 수상후 사진)

 

 

다른 애들은 놔두고 저만 지역 학교에 잡아두려 했기 때문에

 

결국 수원이나 서울 시내에 원서 내는 시간을 놓쳐서 

 

그대로 남던가? 아니면 다른 형제들과는

 

별도로 자취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

 

 

다행이 그렇게 늦진 않아서

 

수원시내 외의 도내 최고 입시 명문고로 진학 

 

이윽고 그것도 형편이 안되어 수원으로 이사,  먼거리 통학,

 

독학으로 재수, 서울대 입시에서의 거듭되는 불운..

 

 

그래서 지역 소재 대학에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입학,

 

수원에서 공부했던 고향 친구는 고려대 법대에 입학! 

 

 

그후 잠시 방황도 했었지만..

 

미국 시카고 대학원에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 하지만

 

국내 대기업 연구원으로 남아야 했던 일

 

 

그후..

 

대학원에서 석사..

 

다리를 고치고..

 

직장을 옮기고..

 

다시 대학원에서 박사..

 

다리를 교정하고..

 

다시 다리를 다치고..

 

대기업 임원이 되고..

 

연구소장이 되고..

 

 

그거외에도...??   

   

조금은 먼길로 돌아야 했거든요. 

 

2011.09. 09. 내용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