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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소련붕괴는 내 잘못 아닌 업적" (논설 추가 : 시진핑, 고르바초프, 한반도 운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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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소련붕괴는 내 잘못 아닌 업적" (논설 추가 : 시진핑, 고르바초프, 한반도 운명)
김민섭 [Dr. rafael] 2013. 4. 1. 13:00(알마티=연합뉴스) 김현태 특파원 = 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붕괴 책임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공개강연에서 "붕괴가 나의 잘못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하고 근거 없으며 기만하는 일"이라면서 "(집권 당시) 소련연방의 현대화와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봤다"고 말한 것으로 카자흐스탄 국영통신 카진포름이 1일 보도했다.
그는 오히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며 러시아와 동유럽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또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철수시킨 일 역시 자신의 업적에 덧붙였다.
소련붕괴후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이 소련의 개혁을 이끌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옐친은 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반대해 일으켰다 실패한 쿠데타에 대해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었다.
mtkh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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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고르바초프, 한반도 (운명)
이용식/논설실장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최근 남북 관계에 드리워진 어둠은 중대 변화의 전조(前兆)다. 이런 시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했다. 그가 경제발전과 정치개혁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에 일단 긍정적 신호다. 재선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일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닥칠 격변의 예고편이다. 세계사적으로도 1980년대 소련 및 동유럽 붕괴와 냉전 종식에 버금가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겠지만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이외의 대안은 없다. 북한의 체제 실패로 연방제나 중립화 통일론은 환상임이 거듭 입증됐다. 통일 비용은 줄이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그 반대일지는 대한민국의 지혜와 의지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중국의 선택이다. 계속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후견 역할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자국의 경제성장과 안보 등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대한민국으로의 통일을 수용할 것인가.
현재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고심은 20여 년 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당시 소련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독일 통일은 곧 서독으로의 통일을 의미했고, 이는 공산주의 소련에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통독보다는 분단 유지가 긴요했다. 그러나 1985년 콘스탄틴 체르넨코에 이어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자국 발전을 위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서독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통독이 소련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임을 적극 설득했다. 대규모의 경제 지원도 연계했다.
여기에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군비경쟁을 통해 소련의 변화를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정상회담과 수많은 친서 교환을 통해 소련을 안심시켰다. 레이건이 1987년 6월 12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문을 여시오!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고, 2년 남짓 지나 그 말은 실현됐다. ‘두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및 소련과 ‘2+4회담’을 열고 통독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켰다. 대학생 때 ‘콤소몰’에 가입해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을 정도로 확고한 공산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결단이 몰고온 거대한 변화들, 즉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 블록 및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지켜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소련에 동독이 절실했던 것 이상으로 중국 역시 북한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역시 대를 이어, 뼛속까지 공산당원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처럼 중국 및 공산당의 대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건국 이후, 특히 6·25 전쟁 발발 이후에 태어난 첫 지도자다. 6·25 전쟁에 대해 ‘항미원조(抗美援朝)’ 입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실용주의 정책을 포기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성격을 ‘혁명당’에서 ‘집정(執政)당’으로 바꿨다. ‘권력은 인민이 부여한 것이며, 인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권 내부의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력 등 개혁·개방에도 적극적이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은 국가 존속을 위해 개혁·개방이 불가피했고 이 과정에서 동독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 순조로운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과 남북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는 가운데 오는 5월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있다. 1980년대 서독과 미국·소련은 정상 차원에서 통독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이 진솔하게 협의한다면 한반도 통일은 더 예측가능하고, 덜 소모적인 경로를 거치게 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대한민국에 기회의 문을 넓혀주고 있다.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통일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최근 남북 관계에 드리워진 어둠은 중대 변화의 전조(前兆)다. 이런 시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했다. 그가 경제발전과 정치개혁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에 일단 긍정적 신호다. 재선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일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닥칠 격변의 예고편이다. 세계사적으로도 1980년대 소련 및 동유럽 붕괴와 냉전 종식에 버금가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겠지만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이외의 대안은 없다. 북한의 체제 실패로 연방제나 중립화 통일론은 환상임이 거듭 입증됐다. 통일 비용은 줄이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그 반대일지는 대한민국의 지혜와 의지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중국의 선택이다. 계속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후견 역할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자국의 경제성장과 안보 등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대한민국으로의 통일을 수용할 것인가.
현재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고심은 20여 년 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당시 소련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독일 통일은 곧 서독으로의 통일을 의미했고, 이는 공산주의 소련에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통독보다는 분단 유지가 긴요했다. 그러나 1985년 콘스탄틴 체르넨코에 이어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자국 발전을 위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서독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통독이 소련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임을 적극 설득했다. 대규모의 경제 지원도 연계했다.
여기에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군비경쟁을 통해 소련의 변화를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정상회담과 수많은 친서 교환을 통해 소련을 안심시켰다. 레이건이 1987년 6월 12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문을 여시오!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고, 2년 남짓 지나 그 말은 실현됐다. ‘두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및 소련과 ‘2+4회담’을 열고 통독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켰다. 대학생 때 ‘콤소몰’에 가입해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을 정도로 확고한 공산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결단이 몰고온 거대한 변화들, 즉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 블록 및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지켜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소련에 동독이 절실했던 것 이상으로 중국 역시 북한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역시 대를 이어, 뼛속까지 공산당원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처럼 중국 및 공산당의 대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건국 이후, 특히 6·25 전쟁 발발 이후에 태어난 첫 지도자다. 6·25 전쟁에 대해 ‘항미원조(抗美援朝)’ 입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실용주의 정책을 포기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성격을 ‘혁명당’에서 ‘집정(執政)당’으로 바꿨다. ‘권력은 인민이 부여한 것이며, 인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권 내부의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력 등 개혁·개방에도 적극적이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은 국가 존속을 위해 개혁·개방이 불가피했고 이 과정에서 동독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 순조로운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과 남북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는 가운데 오는 5월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있다. 1980년대 서독과 미국·소련은 정상 차원에서 통독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이 진솔하게 협의한다면 한반도 통일은 더 예측가능하고, 덜 소모적인 경로를 거치게 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대한민국에 기회의 문을 넓혀주고 있다.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통일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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