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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몽타주와 청주 범인 이춘재 출신학교 얼굴 사진, 거주지와 직장, 정서불안 성도착증 유발과 수원 비행장 및 철도 소음 연관성 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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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몽타주와 청주 범인 이춘재 출신학교 얼굴 사진, 거주지와 직장, 정서불안 성도착증 유발과 수원 비행장 및 철도 소음 연관성 등

김민섭 [Dr. rafael] 2019. 9. 20. 11:42



24,5세때 버스내 목격자 몽타주와 나이들어 생김새



청주사건 기사와 이춘재 수원 S고교때 졸업 앨범 사진


거의 똑같지 않나요? 1986년 9월부터 화성 연쇄살인사건 버스 기사 등 목격자 진술로 그려진 몽타주와

93년 검거 당시(31세) 이씨는 건설 현장을 전전하는 포크레인 기사였고 판결문에는 무직이라 기술되어 있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은 대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경찰이 주로 시위 진압이나 질서 유지 활동에 차출되기도 하고

당시 혼란스런 상황과 오염된 혈액에 근거해 용의자를 근처의 대학생이거나 B형 혈액형인 걸로 특정을 해서 그렇게 된게 아닌가 싶고


또, 당연히 그가 범행과 관련하여 1994년 청주 살인사건으로 검거되기 전에 살던 곳은 어디였는지 또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았었는지도

궁금했었는데 마침 그 자료도 오픈되어 추가하여 봅니다.



추가 공개된 수원 S고교 졸업 앨범속 이춘재 사진



금번 DNA 분석중 확인된 O형 혈액형의 이춘재 5,7,9차 범행 장소




태안읍 진안1리 이춘재 거주지와 범행 장소



태안읍 안녕리 이춘재 직장과 범행 장소


놀랍게도

이춘재의 고향은 한 때 잘못 보도된 전남 신안군이 아니라 수원 오산간 1번 국도변인 화성 병점에서 동쪽의


태안읍 진안1리(현재 화성시 진안동)이며 고교도 수원 한복판의 S실업고등학교를 1983년 2월에 졸업하였고 

 

그해에 군대에 입대한 후 (복역중 휴가와 외박도 가능했을거고) 


제대는 1986년 1월 전역했다고 하며 직장은 공업계고졸 출신으로 진안리 집에서 약 5Km


지방도를 따라 서남쪽으로 태안읍 안녕리의 전기 공장 (일진전기)과 퇴근 후엔 주로 다방에서 놀다 갔다고하는데


범행 지점들이 모두 집이나 직장 출퇴근 길 주변이었고, 집에서 가장 먼 7차 지점 (몽타주)도 10㎞이내 였다고 합니다.


그는 경찰에 의해 3번씩이나 조사받고도 피해자와 혼재된 반응물로 O형이 B형 색상으로 분석된 결과

빗물에 씻겨 작아진 족적 사이즈에 근거하여 측정된 신발 사이즈 당시 부정확하게 분석된 결과를 갖고

수사한 결과  증거 불합치 내지 불충분으로 유력한 진범으로 특정되지 못하고 미해결 연쇄살인사건이 되어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이후에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도 매번 전국민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수사관들이 범인 몽타주와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고 있을 화성 진범에게 째려 보는듯한 표정




공소시효 폐지 및 재수사에 영향을 준 사건과 영화들


그렇다면 지난 18일 경찰이 이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게 된 DNA 감식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 그 정확도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국과수 DNA 감식 과정 (PCR을 통한 DNA 증폭 기술 적용, 92~94년 필자 대학원 발표 논문 및 학위 논문에도 사용된 기술임) 


이렇게 하여 확보한 국과수의 DNA 감식 결과는 99.99% 이상의 정확도를 갖고

있음에도 범행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무모함에도


공소시효 만료로 응당한 처벌(사형)이 어렵다지만


당시 수많은 성폭행 피해 여성들과 살해된 영혼들, 애인이나 관련 유가족들의 원한을 일부라도 풀리게 하고,

화성에 사는 다수의 선량한 지역민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진범으로 특정된 용의자를 종신토록 수감토록 하고

 수용소에서 일체의 가석방 출소나 외출 외박을 금하며 마땅히 그 범인의 신상 등도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위와 같이 게시해 봅니다.


그런데 ‘화성 용의자’ 이춘재는 이전 재판에서도


 집에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선임한 변호사와 범행 사실 극구 부인 무기징역형 을 받은 거라 하네요.

그래서 오늘 같은 날도 오지 않았나 쉽고요.



<수원 비행장 활주로와 이씨 동네>

< 이씨 동네에서 본 수원 비행장과 철도>

그런데 이씨가 살았던 태안읍 진안리는 1954년에 설치된 수원 비행장 활주로 주변이고

 1일 평균 76.3회나 운항해 인근 주민들이 군용 비행기들 굉음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다

경부선 철도 소음까지 있어 이들 환경이 이씨의 정서 형성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 마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