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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꿈을 해킹하는 '인셉션'

김민섭 [Dr. rafael] 2010. 8. 15. 21:15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셉션>은 분명 지난 10여년의 시간동안 SF 장르에 드리웠던 <매트릭스>의 거대한 그늘을 벗어난 명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매트릭스>의 아성에 도전했던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 그러나 정작 관객의 인식에 충격과 균열을 선사했다고 평가할 만한 작품은 부재했었을 뿐만 아니라 비교 자체가 합당치 못한 작품들도 꽤 있었다. 그런 현실에 있어 <인셉션>은 <아바타>와 같이 3D란 기술로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디스트릭트 9>처럼 치열한 정치적 인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SF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다.
 

 

 

드림머신이란 도구를 통해 타인의 꿈속에 스며들어 그의 생각을 훔치거나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미래. 이에 대응해 방책을 마련하는 보안전문가이자 동시에 표적이 된 인물의 생각과 정보를 해킹하는 한 사내가 있다. 코브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모종의 사건에 연루돼 현재 수배 중. 덕분에 그는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녀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이 있는 고향으로도 찾아가 볼 수 없는 처지다. 그러던 차에 자신이 해킹을 시도했던 한 사업가에게서 은밀한 제안이 들어온다. 경쟁업체의 주요인물 꿈에 침투, 회사를 분할 매각할 수 있는 사고를 심어달라는 것. 성공할 경우 그에게 내린 수배령을 풀어주겠다는 이 사업가의 제안에 코브는 응하게 된다.

<인셉션>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호접몽 모티브는 그리 낯설지는 않은 소재다. 단순히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기술의 발달 속에 등장한 가상현실과 이에 대한 호기심이 급격히 팽창하던 90년대 후반의 SF에서는 오히려 빈번히 보이던 설정이기도 했다. <토탈 리콜>(1990),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다크 시티>(1998), <13층>(1999), <매트릭스>(1999), <바닐라 스카이>(2001) 등 큰 틀에서 보면 호접몽을 토대로 했던 작품들이 대부분 이 시기를 전후해 나왔다.

때문에 꿈으로 깊숙이 잠영하는 <인셉션>도 그 시작에서부터 일종의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메멘토>, <다트 나이트>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과 평단의 환호를 동시에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이라고 하더라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어필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셉션>은 호접몽이란 단일한 철학적 사고의 지반 위에 세워진 빈약한 건축물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그러한 우려를 기우로 선언한다.

놀란이 선택한 진부함의 극복 방법은 자신의 장기인 기억과 무의식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서구 문명이 주체로 설 수 있게 만들어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코기토를 허무는 동시에, 대신 그 자리에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는 라캉의 선언을 주춧돌 삼아 새로운 세계를 세워 올린다. <인셉션>은 여기에 타인의 무의식에 조작된 꿈을 심는다는 내용을 첨부해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의 문제까지 집결시키며 철학적 사유의 확장과 증식을 거듭해나간다.

화려한 오락적 요소와 유사한 철학적 토대가 녹아든 작품이란 점에서 <인셉션>은 <매트릭스>와 비슷한 작품으로 인지되지만 결정적 차이는 바로 거기에서 발생한다. 즉 시뮬라시옹 이론을 바탕으로 한 <매트릭스>가 단층 구조의 복제 현실을 재현하며 상승 운동을 꾀했다면, <인셉션>은 반대로 다층 구조의 무의식이 창조한 현실로 점층적으로 하강하며 침잠해 내려가는 방향으로 SF의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골치 아픈 철학적 세계관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인셉션>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꿈의 안과 밖의 상황이 동시간대에 진행되지만 관객의 정보처리 용량을 벗어날 만큼 어지럽게 전개되지는 않을뿐더러 극이 진행되는 내내 용어와 개념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덧붙기 때문이다(덕분에 초반에 아주 조금 내용이 늘어지는 느낌을 주긴 한다). 게다가 에디뜨 피아프의 음악, 에셔의 그림(석판화), 단테의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적 방언과 삽화도 관객에게 이해에 따르는 피로도를 덜어주며 간접적으로 차원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은 과거와 현재란 시간,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에셔의 ‘상대성’은 중력이 적용되는 공간,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림보는 삶과 죽음이란 초월적 세계를 다룬다).

이미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에 또 하나의 호평을 덧붙이는 것은 위험부담을 피하는 길이 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책임감이란 측면에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셉션>에는 이렇다 지적할 만한 단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의 전작인 <다크 나이트>에 비해 더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영화로 보인다.

<인셉션>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표현력을 지닌 착실한 건축가임을 내보이는 작품이다.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무의식적 원형의 세계를 디자인한 그의 세공력은 눈이 부실 정도며, 자신이 구상한 세계를 시각적 이미지로 창조(‘옮겨놓았다’는 표현은 부족하다)하고 그것을 조립하고 배치한 치밀한 직조력은 완벽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경지다. 영화에 장착된 철학에서부터 시작해 탄탄한 내적 구성력을 지닌 세계관, 성공적으로 시각화된 이미지들,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내용 등. 그는 그 모든 것들을 건축물을 짓듯이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침내 처음과 끝이 동일한 하나의 완결된 원형적 무의식을 완공시키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놀란이야말로 관객의 머리에 교묘한 방법으로 잘 침투하는 엑스트렉터(extractor)이자, 꿈의 세계를 설계해 보여주는 아키텍트(architect)가 아닐는지.

<안세진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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