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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A+ 인생'의 선택은? 의치대 학업계속, 또는 교수, 법조인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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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A+ 인생'의 선택은? 의치대 학업계속, 또는 교수, 법조인으로...

김민섭 [Dr. rafael] 2010. 5. 11. 13:36

● 집중추적 / 서울대 수석 졸업 112명 어디서 뭘하나
55%는 대학원 진학 의치대로 진로 바꾸기도
연봉은 경영대 '강세' 법조인 가장 많이 선택

 

 
작년 2월 서울대 미대를 수석 졸업한 윤나래(여·26)씨는 오는 3월 서울대 의학대학원에 입학한다. 의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택한 길이다.

"인체 해부도(圖)는 미술과 생물의 결합이에요. 해부학이나 조직학을 배워 영상의학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요."

2001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를 수석 졸업한 이경주(33)씨는 한국마사회에서 일반인에게 승마를 보급하는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학부 졸업 후 2년간 서울대 농생대 대학원 동물유전공학실에서 공부했지만, 넉넉잖은 가정 형편에 교수 될 때까지 버틸 자신이 없어 취업을 결심했다. 이씨는 "공부를 그만둔 건 아쉽지만 우리나라 말(馬) 산업의 미래를 일구는 지금 일에 만족한다"고 했다.

◆수재 중의 수재, 서울대 수석졸업생들

서울대는 매년 2월 16개 단과대학마다 1명씩 모두 16명의 '수석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들의 평점은 만점(4.3점)에서 0.1점 미만이 모자라는 4.2점 대이다. 'A+' 말고 다른 점수는 거의 받아본 적이 없어야 이런 평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남들과 다른 졸업장을 받는다. 보통 학생 졸업장에는 그냥 '졸업장'이라고 써 있다. 그러나 수석 졸업생 졸업장에는 '최우수 졸업장'이라고 써 있다. 보통 학생은 학과 사무실에 쌓여 있는 졸업장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수석 졸업생은 졸업식장에서 총장이 친히 상패와 졸업장을 건넨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최근 10년간 모두 160명이 이 남다른 졸업장을 받았다. 본지가 이들의 근황을 확인했다. 모두 112명이 연락이 닿았다.

◆가장 흔한 행로는 '학업 계속'

'수재 중의 수재'들이 가장 흔하게 택한 인생 행로는 '학업'이었다. 11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2명이 대학원으로 직행했다. 보통 서울대 졸업생이 열명 중 세명꼴로(29%)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보다 두 배 가까운 진학률이다. 진학한 학교별로 보면, 서울대 대학원을 택한 사람이 52명(84%), 국내 다른 대학원이나 해외 대학원에 간 사람이 10명(16%)이었다.

국내외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한 사람 62명 가운데 51명은 석사를 마친 뒤 국내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하거나 하버드·예일·스탠퍼드대학, MIT 공대 등으로 유학 갔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석사를 끝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가장 많이 택하는 직업은 '법조인'

수석 졸업생들의 행로는 다양했다. 112명 가운데 현재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50명이었다. 의대·치의대·수의대·간호대를 졸업하고 각각 의사·치과의사·수의사·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30명이었다. 이밖에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한 사람은 모두 20명이었다

단일 직업으로 가장 많은 것은 '법조인'이었다. 근황이 확인된 법대 수석 졸업생 8명 가운데 6명이 사시에 합격했고, 나머지 2명은 사시 준비 중이었다. 다른 단과대 수석 졸업생 중에도 2000년과 2002년에 경영대를 수석 졸업한 사람이 사시에 합격해 각각 중소기업 법무팀장과 사법연수원생으로 일하고 있었다.

기업체 취업은 역시 경영대 수석 졸업생들이 '강세'였다. 김성원(31·2004년 수석 졸업)씨는 삼일회계법인을 거쳐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김기록(31·2006년 수석 졸업)씨는 삼일회계법인에 들어갔다. 김지선(여·27·2005년 수석 졸업)씨는 국내 모 대기업에 다니다 미국의 한 경영전문대학원에 유학갔다. 김태경(27·2008년 수석 졸업)씨는 다국적 컨설팅회사인 올리버와이만에서 근무 중이다.

◆수석 졸업생도 '미래'는 불투명

사회 전체적으로는 극심한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지만, 서울대 수석 졸업생들은 대부분 졸업 6개월 안에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사회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간호대 수석 졸업생 10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사람은 6명이었다. 그 중 5명은 간호사로 근무 중이지만 한 명은 약대로 길을 바꿨다. 황은성(여·25·2007년 수석 졸업)씨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1년 남짓 근무하다 퇴직하고 약대 편입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황씨는 "간호사 일이 육체적으로 너무 고단했다"며 "약대를 졸업한 뒤 신약 개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창(25·2008년 공대 수석 졸업)씨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공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적성에 안 맞거나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나를 포함한 공대생들이 꼭 돈만 보고 진로를 바꾼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2001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을 수석 졸업한 이경주씨는 한국마사회에서 일하고 있다(왼쪽), 2008년 서울대 공대를 수석 졸업하고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간 김희창씨는 전공을 바꾼 이유에 대해“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남을 돕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뚜렷한 진로 못 정해 '암중모색'도

서울대를 수석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정규직 일자리를 찾아 헤맨 사람도 있었다. 뚜렷한 방향 없이 진로를 암중모색 중인 사람도 있었다.

최근 사범대를 수석 졸업한 사람 중 하나인 이모씨는 작년 3월 정교사로 임용됐다. 졸업 후 꼬박 1년간 서울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뒤였다. 이씨는 "학부를 마친 뒤 임용시험과 대학원 진학을 놓고 갈등하다 기간제 교사 일자리를 구했다"며 "'현장을 배우는 중'이라고 자위(自慰)하긴 했지만 솔직히 서울대를 수석 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일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자연대 수석졸업자 중 하나인 정모씨는 학부 졸업 후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혼자 공부를 하다가 입대했다. 정씨의 어머니는 "고시 공부는 아니고, 영어 공부는 좀 한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며 "엄마한테 말은 안 해도 앞날을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공부든 취직이든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장된 미래 버리고 사회 봉사 택하기도

보장된 미래 대신 소신에 따라 박봉의 직업을 택한 이도 있었다. 2003년 미대를 수석 졸업한 손형우(39)씨는 2006년부터 경기도 구리시의 두레대안학교에서 월급 60여만원의 미술교사로 일하고 있다. 손씨는 "학부 졸업 후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어머니가 복막염으로 쓰러져 두 달간 병상을 지켰다"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인생이 짧은데 작업실에 틀어박혀 내 그림만 그리지 말고 적게 벌더라도 남을 돕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7년 인문대를 수석 졸업한 백은진(여·25)씨는 언어치료사를 목표로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친척들은 "월급도 의사보다 적은데 차라리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말렸다. 백씨는 "전공(언어학)을 살려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라 이 길을 택했다"며 "내 선택에 아직은 후회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