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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틸러, 캐스 선스타인 <넛지> - 똑똑한 선택의 힘, 넛지란 무엇인가? 본문
리처드 틸러, 캐스 선스타인 <넛지> - 똑똑한 선택의 힘, 넛지란 무엇인가?
김민섭 [Dr. rafael] 2010. 8. 7. 12:00
경제학과 심리학이 상당히 밀접한 학문이란걸 경제학 서적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곤 한다. 경제라는 용어가 주는 뉘앙스는 인간이 몹시도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라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의 기본 특성은 그러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냐, 되지 않냐를 판단하고 가장 이로운 것을 선택하고,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인간의 선택과 경제행위가 여러가지 불완전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여러 실험으로 증명된다. 이것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성질을 안고 있는 경제적 동물임을 보여준다. 이 모순 때문에 실제 경제활동에선 실로 무수한 오류를 드러내는데,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학은 어떤 대안들을 내놓고 있을까?
웰빙 바람이 불고 난후 사람들은 인스턴트를 멀리하고 유기농 식품을 선호한다. 인스턴트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고플때 눈에 보이는 빵이나 과자 같은걸 주워먹곤 한다. 평소엔 건강의 전도사가 되어 유기농 음식의 이로움을 설파하던 사람들도, 불량식품을 먹는걸 가끔 자제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당장에 배가 고픈 사람에게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으면 먹지 않았을 음식을 `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는 이유로 섭취하게 된다.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쇼핑을 할때 아예 그런 물품을 집안에 들이지 않도록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량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최선의 길은 그런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아주 어렵게 만들어 놓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같은 방법은 건전한 경제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매달 저축을 꼬박꼬박 하는 최선의 길은 월급에서 아예 자동이체를 시켜놓는 것이다. 저축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실제로 매달 따로 돈을 떼어서 저축행위를 하기란 쉽지 않다. 신용카드가 가끔 말썽을 일으킨다. 지갑에서 돈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린 쉽게 충동구매를 하고 카드를 긋곤 한다. 그러다보면 월말에 월급잔고는 바닥을 헤매기 일수다. 해결책은 뭘까? 좀 과격하긴 하지만 자제심이 없다면 카드를 잘라 휴지통에 버리고, 오직 직불카드나 현금 소비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이 경제활동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카고 대학의 교수이자 행동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탈러와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은 그들의 공저 <넛지Nudge>에서 "인간은 천재인 동시에 바보다"라는 말로, 이 오류를 설명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흥미롭게도 이 `바보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를 다룬다. 그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자.
프레이밍: 100명 중 90명이 산다 vs. 100명 중 10명이 죽는다
당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려 의사와 상담을 한다고 하자. 의사는 수술을 하면 100명 가운데 90명이 산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물론 희망을 갖고 당장에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의사가 다른 식으로 프레이밍(선택안의 틀을 형성) 한다고 치자. 100명을 수술했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은 어땠을까? 의사의 이 말에 충격을 받아 수술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사실,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이나 같은 얘기다. 원숭이에게 도톨이를 아침에 3개주고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해서 화를 돋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일화가 연상되는 경우다.
대표성의 오류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에 대해 런던 주민들이 보인 행동 양상을 예로 들고 있다. 런던의 신문들은 독일군 폭격기의 폭탄투하 지점을 지도로 만들어 배포했다. 특이하게도 이 모형은 템스 강 주변과 지도의 북서쪽 지역에 폭탄이 집중 투하된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빈공백은 독일군 스파이들이 거주하는 곳이 아닌가, 의심하기에 이르렀는데 통계를 활용하여 푹탄의 분포를 상세히 분석해 보니, 투하지점은 무작위였음이 드러났다. 방법은 쉬웠다. 간단히 지도를 4등분 해서, 분포 지역이 예외없이 균일했던 것으로 그 오류를 밝혀낸 것이다. 인간 시각의 불완전성과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조명효과 : 모두가 나를 주목해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시선에 몹시도 큰 비중을 둔다. 자신의 외모와 옷차림에 특히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는 그의 동료들과 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를 내 놓는다. 피실험자에게 티셔츠의 앞면에 대문짝만한 연예인 사진을 입히고 하나의 공간에 등장했다 퇴장한 시킨후, 그 공간에 머문 사람들에게 그 연예인의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결과는? 겨우 21% 사람만이 연예인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맞췄다. 이 실험결과로 두고보면, 사람들이 타인을 의식하는것에 쓸데없는 감정낭비를 하고 있단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겉보기엔 몹시도 인지적이자 합리적인 동물인냥 자신을 가장하지만, 수많은 판단과 선택에서 오류를 범하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같은 오류는 경제활동에 비합리성을 가져와 개인과 국가에 손해를 안기는게 문제다. 불완전한 판단력을 소유한 인간이 합리성이 요구되는 경제활동을 안전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그들에게 `넛지'를 가하는 것이다. 넛지의 뜻은 세가지 정도로 해석되지만, 3번이 저자들이 이 책에서 사용한 넛지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넛지 nudge
1.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2. 주위를 환기시킨다 3.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by 탈러 & 선스타인) |
넛지는 어떤 매커니즘을 갖고 있을까? 학교의 급식 과정에서 음식을 배열하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음식별 소비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채소를 잘 먹지 않으면 채소를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한다. 아이들이 고기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면, 고기 메뉴를 잘 보이지 않게 배치할 수도 있다. 이같은 배치를 주도하는 이를, 이 책의 저자들은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 부른다. 선택 설계자들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현실 세계에는 무수한 선택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이 선택설계자들은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인 넛지를 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초기 설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정할 수 있다.
경제활동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결핍된 존재인데, 시의 적절하게 넛지를 가해준다면 인간 사회는 보다 옳고,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수많은 예시를 들어 보여주려 한다. 예시로 든 넛지의 예들은 다종다양하다. 사회 보장 시스템, 미국 의료보험 프로그램,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방법, 환경을 살리는 사회적 넛지, 결혼의 민영화, 점진적 기부 증대, 자동 세금 환급, 등 무수한 영역에서 우리는 선택설계자들이 마련한 `부드러운 개입'을 유도받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한 넛지의 가장 흥미로운 성공 사례는 넛지가 가진 위력과 효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자화장실의 소변기 주위는 항상 지저분하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 남자 화장실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구들은 의미심장하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1cm접근 1%의 청결함", 이 모두가 어떻게든 넛지를 가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소변기 하단 부분에 가짜 파리 한마리를 붙여 둔걸 볼 수 있다. 남자들이 소변을 보면서 여기에 `조준'을 하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가짜 파리를 붙인후, 소변이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비율이 80%나 감소되었다, 고 한다. 아이디어 넘치는 작은 넛지가 환경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줄인 사례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넛지>, p21
이 책은 이 넛지의 활용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적인 시스템을 예시로 들고 온다. 책의 전반부가 인간이 선택 오류를 범하는 존재들이란 것을 수많은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면, 책의 후반부는 주로 미국적 상황에서 넛지의 활용예를 가져와 구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전반부는 경제학에서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무수한 판단착오 가능성을 지닌 인간과 경제학의 합리성은 아무래도 매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책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과 이콘"이란 대립적 모형을 제시한다. 이콘은 컴퓨터와 같이 정확한 경제학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인간이다. 후반부는 조금 지루한데, 미국적 상황에서 넛지의 활용 예시들을 설명한 여러 장들은 문화적 상이성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고, 독해에 인내를 요구한다. 이 부분은 번역서의 한계를 드러내며 약간 난해하며, 재미를 반감시킨다. 이 책에 별 4개를 못 준 이유다.
작년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이제야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경제 지식을 보완하고자 선택한 책인데, 딱히 경제학 서적이라고 특징지울 수가 없을 듯 하다. 경제와 심리, 정치와 사회 모든 부분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넛지'라는 개념을 들고와 인간 심리의 불완전성을 보여주고, 사회가 어떻게 무지한 대중을 옳은 선택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예시로 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주장하는 넛지라는 개념은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사실 많은 부분에서 그같은 넛지들이 활용되고 있다.
긍정적인 넛지가 있는 반면 걔중엔 인간의 불완전성을 악용한 나쁜 넛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겠다. 보험 가입이나 상품 구입시 특정 집단의 선택설계자에 의해 설정된 `디폴트' 조항은 대표적인 불량 넛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주위에 시시탐탐, 사익집단의 이익을 위해 임의의 넛지를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있음을 놓치면 안 된다. 이 책에서 얻은 넛지라는 개념을 참고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선택 행위에서 보다 똑똑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모든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넛지라는 중심적 개념은 영양가가 높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무수한 예로 확인한 점은 앞으로 독자들이 행복한 경제활동을 하는데 참고가 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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