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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政府 에너지자원 政策 - 노태우 정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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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政府 에너지자원 政策 - 노태우 정부

김민섭 [Dr. rafael] 2010. 10. 10. 16:30

 

노태우 전 대통령

 

출생
1932년 12월 4일, 대구
가족
배우자 김옥숙노소영
학력
육군사관학교
경력
1993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자문회의 위원
1988년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수상
1992년 아시아협회 올해의 정치인상
영국 대훈장

 

 

고속성장 타고 에너지 안전공급에 정책 집중


 

 

 

 
▲ ① 노태우 정권하에서 경제는 악화되어 갔으나 연평균 8.5%라는 고속성장을 누렸고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는 발전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② 노태우 정부 시절 우리나라 경제는 1986년 이후 3저(低) 호기를 맞아 급성장을 이룩함으로써 1989년 4년간 총 279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③ 8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대수는 연간 23% 이상의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자가용 승용차의 경우에는 연간 30% 이상 증가해 1989년 석유소비 증가분의 40% 이상이 수송용 석유증가에 기인했다.

88년 이후 자동차 증가 등 석유소비 급증
93년 동력자원부 폐지…상공자원부 신설
정부 규제·간섭 최소화 자생력 배양

80년대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기록한 시기였다. 노태우 정권하에서 경제는 악화되었으나 연평균 8.5%라는 고속 성장을 누렸다. 이때에는 전반적으로 국제원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제 성장에 따라 에너지 소비도 꾸준히 증가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우리나라 경제는 1986년 이후 3저(低) 호기를 맞아 급성장을 이룩함으로써 1989년 4년간 총 279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와 같이 단기간에 대규모의 무역흑자를 달성 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내물가 안정과 일본 엔화의 고평가 그리고 국제금리의 하락 등에 따른 수출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원유가격의 폭락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자 비OPEC국가들이 석유생산량을 증가시켜 국제원유시장에서 공급과잉상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OPEC(석유수출기구)과 비OPEC간의 가격경쟁이 시작되어 1980년대 중반부터 원유가격이 하락했으며 한때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폭락하기도 했다. 원유도입 가격은 86년 배럴당 14.17달러로 81년 34.11달러에 비해 58%나 하락했다.

1986년 이후에는 저유가 중화학공업 등 에너지다소비업종의 생산설비 신·증설과 국민소득수준의 향상, 1988년 서울올림픽 등으로 에너지소비가 급등했다. 특히 88년 이후 경기 하락에도 불구하고 석유소비가 지속적인 급증추세를 나타낸 것은 저유가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과소비 풍조에 영향을 받아 산업 이외의 부문에서 석유소비 증가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즉 8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대수는 연간 23% 이상의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특히 자가용 승용차의 경우에는 연간 30% 이상 증가해 1989년의 경우 석유소비 증가분의 40% 이상이 수송용 석유증가에 기인했다. 가정과 상업분에서 취사용과 난방용으로 사용된 프로판 등유 경유의 석유소비 증가 기여도는 25%에 달했다.

1990년대 초에는 원유가격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힘입어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연간 10%를 상회했다. 1차 에너지에 대한 수요 중 60.5% 석유였고 유연탄이 17.9% 원자력이 11.2% LNG가 7.3% 그리고 무연탄이 1.5%를 차지했다.

결국 70년대 석유파동으로 국내는 잔뜩 움츠려 있다가 석유가격의 안정화로 폭발적인 에너지 소비가 이뤄진 시기가 바로 이때다.

 

●에너지 소비절약과 석유 대체에너지 이용 초점

이에 따라 노태우 정부시절 에너지정책 방향은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비절약과 석유 대체에너지의 이용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와 함께 안정적인 에너지공급기반의 확립을 위한 LNG 석탄 원자력 등 석유 대체에너지의 이용을 확대하고 국내 석탄산업의 합리화와 국내외 자원개발로 자주적인 장기안정 공급 기반을 확충하려고 했다. 또 국제 에너지 시장상황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수입제도 운영을 통한 수입에너지의 경제적 확보에 중점을 뒀다. 이밖에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시장경쟁 원리에 의한 경쟁촉진으로 에너지산업의 자생력과 창의력을 키우기도 했다. 에너지 관련 기술 개발과 연구를 확대하며 에너지 절약형 기기의 개발 및 공정개선, 에너지 생산이용기술의 지속개발,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개발 및 실용화 추진도 이 시대 주요 정책으로 거론됐다. 에너지 관련 안전관리와 청정연료 등으로 환경보존을 위한 대책 시행도 빼 놓지 않고 언급됐다. 특히 에너지 소비절약은 과거의 단순절약 방식에서 원천적 절약방식으로 전환하고 정부와 기업 국민전체가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에너지 절약기술개발에 역점을 뒀다.

또한 금융 세제 지원을 통해 기업과 소비자의 절약을 유도하고 정부와 연구기관 및 기업공동으로 실천성 있는 중장기 에너지절약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수요 부문별 중점추진 과제를 설정해 경제구조 자체를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 개편 추진했다.

그 당시 석유는 대체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주종에너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봤다.

이에 원유도입의 효율성 제고와 적정수준의 비축유지, 유전개발사업의 추진, 정유산업의 합리화, 유가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석유 안정적 공급체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장단기 원유수급 환경에 대응하는 원유 도입정책을 수립하고 산유국과의 지원외교 강화와 석유정보체제 보강 등의 노력을 했다.

그 당시 중동지역의 원유공급이 전 세계 수입수요의 60%에 달해 중동원유의 안정공급 가능성과 국내 정제 설비의 적합성을 고려해 원유 도입선의 다변화 시책을 신축적으로 시행했다.

또 국민소득수준의 향상과 산업의 고도화로 고급에너지인 전력수요는 1차 에너지 수요증가율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해 전력의 안정적이고 경제적 공급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원자력 등 대체에너지를 중심으로 석유대체전원개발을 추진해 발전원의 다변화와 환경보호측면에서의 LNG 등 청정연료의 발전증대 등의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발전소건설의 지속추진과 운영의 경제성 제고 및 송배전시설의 확충은 물론 전기요금 제도를 개선하고 근본적인 전력사업의 경영합리화에 초점을 맞췄다.

태양열 풍력 바이오메스 등 대부분의 신재생에너지는 그 당시 연구 개발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보급과 활용실적이 눈에 잡히지 않을 만큼 미미했지만 1988년 대체에너지 개발 촉진법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본격 개발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석유 석탄 등 화석에너지원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신재생에너지의 개발 보급이 가능하게 됐다. 신재생에너지원별로 기술개발 목표를 설정하고 조기에 외국기술 수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이때 마련했다. 또 정부에서는 민간업체의 적극적인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촉진을 위해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강화하고 중요한 기초연구과제를 선정해 국책연구사업으로 기술개발을 촉진하기도 했다.

 

●93년 동력자원부 막을 내리다

국내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총괄하고 자원외교를 담당할 독립부처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77년12월16일 정부는 동력자원부를 신설했다. 동력자원부는 노태우 정권 말인 1993년 상공부와 통합되면서 상공자원부로 개편 폐지됐다. 17년 동안 국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해 온 셈이다. 그 당시 이 조치는 자원행정의 전문화와 집행체계 효율화를 통해 소요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수급의 원활화를 기하기 위한 것이다.

동력자원부는 발족 후 1년간의 검토과정을 거쳐 국내 에너지시스템의 현대화를 위한 중장기계획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감으로써 에너지시스템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 발꿈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정부는 중장기계획에 반영된 국책사업의 수행과 정책여건의 변화 등 행정수요의 변화에 대응해 동력자원부의 에너지행정조직을 점진적으로 확대 개편해 나갔다. 81년 대체에너지과(4월)와 유전개발과(11월)를 신설하고 88년5월에는 에너지부문의 국제정책과 국제교섭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국제협력과’를 신설했다.

노태우 정권의 성과는 에너지 정책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현대적 체계로 전환됐다. 전력공급시설이 크게 확충되고 LNG공급시설 지역난방시설 석유비축시설 등 전에 없던 공급인프라가 건설됐고 에너지공급의 신뢰성이 크게 향상시켰다. 그리고 종전 석탄에 과다 의존하던 에너지수급구조는 석유 유연탄 천연가스 원자력 등 현대적 에너지원으로 다원화 되어 경제성장의 젖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정부 주도적인 관리로 인해 민간부분의 발전 저해를 가져왔다. 이는 정부 민간 수직적인 명령과 복종 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민간부분이 성장이 멈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