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과 그린 라이프
내가 속했던/응원했었던 야구팀 본문
(퇴근 후 야구장으로 향하던 자가용과 한 컷...)
(1989년 신인왕 박정현 ... 나의 젊었을 때 얼굴과 흡사한듯...)
태평양 돌핀스
태평양 돌핀스(Taepyungyang Dolphins)는 1982년에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창단 시작으로 1985년에 청보 핀토스,1988년에 인수 창단하여 1995년까지 인천과 경기, 강원지역을 연고지로 존재했던 한국 프로 야구 팀이었다. 태평양 화학이 청보 핀토스를 인수해 1988년3월 8일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다. 우승 경험은 없으나, 뛰어난 투수들로 바탕으로 1989년에는 정규시즌 3위를 기록,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에게 2전 전승으로 승리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3전 전패당하여 패했다.
1994년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승리하여한국 시리즈에 올랐다. 그러나 이 해 1994년한국 시리즈에서 LG 트윈스에 4전 전패로 패하고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995년 시즌까지 구단이 운영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1일, 매각대금 430억원에 현대에 인수되었다. 타선은 '물방망타선'으로 불릴만큼 팀 타율이 전반적으로 낮았으나,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이 별명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도 이어갔다.[1]
청보핀토스를 인수한 태평양화학 기술연구소에 1989년 1월 1일에 입사하어 수원 야구장도 즐겨 찾을 수 있었으니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꼴찌팀이었던 삼미, 청보가 태평양 돌핀스가 되어 한국시리즈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니
지금도 기억나는 선수는 삼미때 30승 투수 장명부, 청보때는 모르겠고 신인왕 박정현,정명원,김경기,김동기 등등...
그때 사진들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다시 눈물이 나네요.
1선발. 1989년 박정현 ... 나의 젊었을 때 얼굴과 너무나 닮았다.
38경기 242.2이닝 방어율 2.15 whip 1.11 19승 10패 2세이브 17완투 116K
89 태평양의 돌풍의 중심. 선동열이 없었다면 최고의 선수로 꼽혔을 박정현. 신인왕 최다승인 19승을 기록했다
190의 큰키에 땅을 훑고 지나가는 언더 투수. 언더 투수가 240이닝을 던진다는건 상상을 하기 힘든 수치이다 거기에 방어율 2점대 초반의 2위기록 다승 2위 탈삼진 5위를 기록했다. 89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2선발. 1989년 최창호
38경기 223.1이닝 방어율 2.22 whip 1.27 10승 14패 2세이브 11완투 191K
89년 태평양 트리오 박정현-최창호-정명원 중 하나인 그. 신인으로서 220이닝이나 던진 그. 비록 1991년을 선택할 수 도 있었지만.... 15승이라는 메리트를 제외하곤 모든게 1989년이 낫다.팀 동료 박정현에 밀려 신인왕을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방어율 3위 다승 11위 탈삼진 2위를 기록했다.
3선발. 1994년 최상덕
36경기 158이닝 방어율 2.51 whip 1.15 13승 9패 1세이브 90K
1994년 태평양에서 4명의 10승 투수가 나타났을때 최다승을 기록한 최상덕. 다승 10위를 기록한 그는 태평양의 투수왕국의 한 축을 맡으며 활약했다. 방어율도 6위를 차지했다.
4선발. 1995년 위재영
36경기 157.2이닝 방어율 3.60 whip 1.21 13승 10패 4세이브 4완투 113K
동산고 시절. 초고교급 투수로서 활약했던 위재영. 태평양에 와서 첫해 13승을 해내며 그 이름의 가치를 톡톡히 해주었다..다승 6위와 탈삼진 13위를 기록하며 그의 등장을 알리는 시즌이었다
5선발. 1994년 김홍집
20경기 126.2이닝 방어율 3.20 whip 1.20 12승 3패 5완투 89K
94년 태평양 10승 투수 4인방 중 no.1,2를 다툴 수 있는 그였다. 방어율 , 다승 11위의 12승에 3패만을 기록하며 승률 8할을 장식하며 승률왕에도 올랐다.
구원 1. 1994년 정명원
50경기 105.2이닝 방어율 1.36 whip 0.94 4승 2패 40세이브 74K
최초 40세이브 장식. 초특급 마무리. 1994년 태평양 돌풍의 주역 '인천소방서장' 정명원. 마무리투수가 1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방어율 1.36을 기록한 그. 김용수선수와 유일하게 비견되는 선수로서 89년 신인 트리오 중 하나이다. 세이브왕을 차지하면서 투수 골든 글러브와 올스타전 3이닝 퍼펙트기록을 작성하며 올스타전 MVP로도 올랐다.
구원 2. 1992년 박은진
46경기 172.2이닝 방어율 2.71 whip 1.27 10승 7패 14세이브 5완투 114K
정명원이 마무리를 맡기 전 태평양의 후반부를 맡았던 주역. 92년 타고투저 시즌에도 172이닝을 던지면서 방어율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선발승이 단 3승인데 완투가 5번이라는건 그의 팀의 사정이 어떤지 알려주는것이다. 다승 15위 탈삼진 10위를 기록했다.
구원 3. 1990년 양상문
34경기 162.1이닝 방어율 3.22 whip 1.27 11승 9패 1세이브 6완투 68K
청보시절 팀의 에이스를 차지한 그. 태평양에 들어오면서 신인 3인방에 치이고 에이스 자리를 물려주었던 하지만 1990년 11승을 하며 팀의 에이스로 다시 섰다. 방어율과 다승 12위 탈삼진 14위를 기록했다.
구원 4. 1994년 안병원
25경기 145.2이닝 방어율 3.40 whip 1.34 11승 10패 2완투 66K
94년 태평양 10승 투수 4인방 중 하나. 다승 14위와 방어율 16위를 기록하며 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활약을 톡톡히 해줬다.
구원 5. 1995년 정민태
28경기 188이닝 방어율 3.69 whip 1.30 8승 13패 8완투 115K
1994년부터 드디어 각성한 정민태. 1995년 사실상 태평양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8승을 기록했다. 190이닝 가까이 던지며 3점대 방어율과 115개(12위)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96년의 정민태를 기대하게 하였다.
포수 1. 1988년 김동기
62경기 타율 .358 ops 1.036 76안타 10홈런 39타점 41득점 3도루
태평양의 안방마님. 1987년 청보에서 김진우가 부상당한 후 태평양의 마지막까지 안방마님을 차지하며(현대때도 활약했지만...) 팀의 중심타자로 섰다. 88년 부상을 당하기 직전까지 타율 3할 5푼을 넘으며 '비공인 타격왕'을 차지했던 그. 물론 수비도 특유의 볼배합으로 정상급 포수 수비능력과 투수리드를 자랑했다. 62경기에 76안타와 10홈런을 기록하면서 특급 기록을 작성했다. 홈런 13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부상탓에 일찍 시즌을 접어서 장채근에게 골든 글러브를 빼앗겼다. 여담으로 그는 앉은 자리에서 맥주 2만CC를 먹는 술 고래였다. 89년에는 전 경기 포수로 출장했다. 그리고 선동열 킬러였다.
포수 2. 1992년 장광호
67경기 타율 .281 ops .742 47안타 4홈런 19타점 20득점 0도루
백업포수. 김동기에 가려져 그 빛을 보지못하고 현대 초기에 그나마 활약했던 장광호. 수비형 포수로 활약했던 그. 현재는 현대유니콘스의 2군배터리코치로 있다.
내야수 1. 1루수 1994년 김경기
124경기 타율 .277 ops .862 120안타 23홈런 70타점 68득점 3도루
인천야구의 4번타자. 인천야구의 자존심. 백넘버 00번 김경기.(사진은 37번이지만...) 태평양의 클린업트리오 윤덕규-김경기-김동기 라인의 중심타자로 94년 전성기를 찍으며 홈런 2위(담장너머로 넘어간건 가장 많음... 어떻게 한시즌에 2개 그것도 한선수한테 2번의 그라운드 홈런이 작성되었는지 놀라울 따름...) 안타 9위 타점 8위 득점 7위를 기록하며 멋진기록을 남겼다. 통산 138홈런을 남기며 SK에서 은퇴를했다.
내야수 2. 2루수 1991년 원원근
115경기 타율 .286 ops .764 105안타 3홈런 38타점 40득점 9도루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스위치 히터. 태평양의 내야수로서 활약한 그. 비록 순위에서는 그렇게 높지는 못한 그였지만 태평양에서는 상당히 좋은 타격을 자랑한 선수다. 1989년 3할을 기록할 정도로 멋진 활약을 했다.
내야수 3. 3루수 1995년 권준헌
110경기 타율 .306 ops .743 121안타 6홈런 34타점 40득점 14도루
강력한 어깨를 지닌 권준헌. 그리하여 투수로 전향한 그. 태평양의 마지막해 그의 특급 송구로 인해, 수비를 최대한 커버하며(수비는 평범한 수준...) 활약했다. 타격 6위 안타 11위를 기록하며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선웅과 대결했지만 다른 기록에서 큰 차이가 없었고 도루가 좀더 뛰어나고 수비면에서 약간 더 나은것 같아서 뽑았다.
내야수 4. 유격수 1994년 염경엽
119경기 타율 .212 ops .552 74안타 2홈런 30타점 33득점 11도루
수비로만 따지자면 역대 유격수 중 세손가락안에 꼽히지 않을까? 최고의 수비를 자랑한 그. 하지만, 그는 공격에서는 늘 멘도사라인을 자랑했다. 진짜 완전히 쉬어가는 타선 100타수이상을 기록한 년도 중 가장 높은 타율이 .213이라는 완벽한 멘도사라인... 김성갑과 함께 그들의 키스톤 콤비는 최강이었지만 공격은 완전히 안습의 능력들... 그래도 그의 수비덕에 94년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내야수 후보 1. 1992년 김성갑
102경기 타율 .288 ops .689 69안타 24타점 27득점 7도루
원래 김성갑을 2루수로 내세웠어야 하는데 공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빼긴 했지만... 그와 염경엽의 키스톤 콤비는 환상이었다. 염경엽에 비해 타격도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꽤나 괜찬은 선수로 자리잡을 수 있다.
내야수 후보 2. 1988년 이선웅
99경기 타율 .308 ops .740 91안타 1홈런 41타점 33득점 5도루
'날으는 돈까스' 청보에서도 3할을 치며 3루를 차지한 그. 하지만 권준헌에게 밀려 아쉽게도 후보가 되었다. 88년에도 3할을 치며 태평양 타선에 힘을 보태주었다. 큰 몸집을 날려가며 3루를 지켜냈다.
내야수 후보 3. 1989년 이광길
120경기 타율 .270 ops .709 100안타 0홈런 38타점 42득점 17도루
태평양 내야 중에는 꽤나 타격이 괜찮은 편이었던 이광길. 17도루를 성공할 정도로 빠른 발을 지닌(?) 그. 100안타를 이뤄내는 도중 순수하게 안타로만 이뤄내는 0홈런의 주인공(파워는 영 아닌듯)... 지금은 SK의 3루코치로.....
외야수 주전 1. 1994년 윤덕규
100경기 타율 .321 ops .879 118안타 11홈런 51타점 49득점 8도루
영원한 3할 타자 윤덕규. 1994년 투고타저속에서 타율 3위를 기록하며 94년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타격부분에서...) 안타 9위도 기록하며 윤덕규-김경기-김동기 라인으로 이루어진 클린업 트리오에서 톡톡히 한몫을 해내며 활약했다. 그래서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는거~~
외야수 주전 2. 1989년 김일권
113경기 타율 .261 ops .658 100안타 1홈런 28타점 48득점 62도루
초대 도루왕이었던 그. 그는 태평양에 들어오면서 개인 최초로 3할을 찍고(88년) 89년 62도루를 작성하며 신기록을 작성하였다. 초특급의 빠른발로 중견수라는 보직을 맡아 상당히 넓은 범위의 수비를 뛸 수 있었고 주루 플레이로 상대방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외야수 주전 3. 1992년 여태구
114경기 타율 .290 ops .819 100안타 9홈런 44타점 63득점 13도루
빠른발과 정확한 타격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줬던 여태구.(현재 슬러거라는 게임에서 중견수로 잘 쓰고 있습니다 ㅋㅋ) 거의 신인급(88년데뷔~95년 은퇴... 태평양과 야구인생의 생활과 은퇴를...)이었던 여태구는 92년 20위의 타격과 18위의 득점력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외야수 후보 1. 1989년 홍문종
114경기 타율 .241 ops .658 92안타 6홈런 31타점 60득점 16도루
이미 롯데에서 주전외야수로 뽑히신 몸. 태평양에서는 노쇠화때문인지 후보로 내려갔다. 하지만 후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은 못된다. 타율은 비록 낮았지만 득점에서 상당한 점수를 얻었다. 득점 6위 도루 15위를 기록 김일권과 합작해 상당히 빠른 외야진을 구축했다.
외야수 후보 2. 1990년 김윤환
119경기 타율 .248 ops .676 84안타 3홈런 40타점 45득점 19도루
태평양 타자들의 고질병. 타율을 제외한다면 쏠쏠한 기록을 작성했던 그였다. 태평양 외야진의 빠른발(은근히 빠르다. 그런데 현대는 왜 그렇담??)때문인지 저타율에 45득점을 기록했다. 도루 8위..
외야수 후보 3. 1991년 이희성
119경기 타율 .229 ops .636 93안타 3홈런 40타점 45득점 24도루
뭐 90년의 김윤환의 기운이 고대로 91년 이희성에게 내려왔는지 기록들이 상당히 비슷하다. 역시 나 빠른 발 (도루 6위)로서 229의 타율에 45득점을 기록했다.
지명타자 1. 1995년 강영수
121경기 타율 .243 ops .778 101안타 21홈런 68타점 71득점 3도루
원래 외야수지만 기록을 딱보면 지명타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95년 태평양 타선이 완전히 침묵을 지킬때 혼자서 21개의 홈런을 날리며 고군분투했다. 홈런 4위를 기록하며 김경기 마저 무너진 태평양의 거포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며 활약 8위 타점과 7위의 득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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